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a Lee Sep 06. 2023

전망 좋은 미술관

New York New York 11

허드슨 강변에 있는 휘트니 미술관(The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에 갔다.

휘트니 미술관은 1931년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Gertrude Vanderbilt Whitney, 1875-1942)가 세운 미술관이다. 조각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였던 그녀는 이 미술관을 통해 미국 현대미술의 장을 열고 미술가들을 후원했다.

휘트니 미술관은 아티스트 3,800명의 작품 26,000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아동과 청소년, 성인을 위한 많은 아트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모두 여섯 개의 전시관을 맨 꼭대기 층부터 보기 시작했다. 열정적으로 그림을 설명해 주는 미술관 직원을 따라 조지아 오키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감상했다.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1986)는 뉴멕시코에 정착해 사막, 꽃, 동물의 유골 등 자연의 모습을 주제로 한 그림들을 그렸다.


여름날(Summer Days, 1936),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이른 일요일 아침(Early Sunday Morning, 1930),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는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로 도시의 일상과 현대인의 소외감, 고독을 그렸다. 이 그림 <이른 일요일 아침(Early Sunday Morning)>과 또 다른 그림들에서 그가 표현한 불안한 정서는 당시 대공황 상태였던 미국의 집단심리를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이른 일요일 아침>은 뉴욕 7번가를 묘사한 그림이라고 하나, 거리의 많은 부분이 생략돼 있어 여느 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건물의 모습과 색채로 일요일 아침 텅 빈 거리를 표현한 이 그림에서 뉴욕이라는 거대한 도시 속 고독이 짙게 느껴진다. 이른 아침 거리에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 동그마니 서서 차도와 인도를 가르고 있는 소화전이 외로움을 자아낸다.


Gettin' Religion, 1948, 아치볼드 존 모틀리 주니어(Archibald John Motley, Jr.)


아치볼드 존 모틀리 주니어(Archibald John Motley Jr., 1891-1981)는 시카고 흑인 커뮤니티의 대표적인 화가였다. 1930년 무렵 남부의 이주민들이 문화가 꽃피던 지역인 시카고 남쪽에 정착하게 되었고,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모틀리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밤 가로등 불빛 아래 모인 다양한 사람들의 역동적인 모습과, 꿈꾸는 듯하면서도 강렬한 색채가 시선을 끄는 그림이었다. 그가 주제와 대상에 쏟아부은 시선은 냉소적이면서 한편 매우 다정한 듯하다.


1963년 비평가 진 스웬슨과의 인터뷰에서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은 팝아트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뭔가를 좋아하는 것이다"라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상품이나 대중성, 상업예술만으로는 팝을 완벽하게 정의할 수 없다. 그의 공식대로라면, 팝은 마음가짐 혹은 행동양식(Attitude)인 것이다. 그로부터 반 세기도 더 지난 후 소셜 미디어가 세상을 항해하는 도구로 '좋아함'을 내세움으로써, 워홀의 팝에 대한 이해는 현대 문화와 더불어 울림이 되고 있다.


Before and After, 1962, 앤디 워홀(Andy Warhol)


이 그림은 워홀이 코 성형 광고에 착안해 그린 네 개의 그림 중 하나다. 자신의 코에 늘 불만이던 워홀은 1950년대 말 코 성형을 하고, 동시에 자신의 원래 성인 'Warhola'에서 마지막 글자 a를 떼어낸다. <Before and After>를 시작으로, 그는 예술의 모호함과 익명성을 추구하게 된다.


기획전시 Inheritance는 그림, 조각, 비디오, 사진, 설치미술 등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물려받으며 또 이들은 어떻게 변화하거나 되살아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Inheritance 전시관에는 미국을 형성해 온 아픈 유산인 아프리카 원주민의 노예화에 대한 작품이 많았다. 노예제는 인종적 폭력과 분리에서부터 부당한 감금, 흑인을 비롯한 다른 유색인종들이 경험하는 보건과 경제 불평등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작업들은 미국 사회의 오점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지만 동시에, 부당함을 정의하는 힘과 그 힘을 이용해 오랜 시간 억압받아온 사람들이 어떻게 새로운 현실에 직면해 살아가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도 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미치 보지 못하는 것들, 혹은 보이고도 외면당하는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밝은 곳으로 서슴지 않고 가져와 예술로 승화시키는 예술가들, 그들이 우리에게 작품을 통해 불어넣어 주는 위로와 깨달음이 얼마나 큰지 다시 한번 느꼈다.

그림이나 노래와 마찬가지로, 글도 늘 새로운 세계와 사람들의 마음을 노크하는 '두드림'의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드릭 브라켄스(Diedrick Brackens, 1989~)의 직물공예 작품은 유전적 기원과 패턴의 짜임으로 자신의 신체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기하학적인 추상성과 자화상을 함께 나타낸 창작품이라 할 수 있다.

태피스트리인 줄 알고 무심히 지나칠 뻔한 작품 속에 이런 의미가 숨어있을 줄은 몰랐다. 작은 반전 같은 작품이었다.


그들은 내 입의 불씨에서 튀어나온다(they spring from the embers of my mouth, 2019), 디드릭 브라켄스


이 미술관의 특징은 미국의 진보적인 현대미술 작품의 전시, 풍부한 기획전, 그리고 층마다 돋보이는 야외 테라스라 할 수 있다.

미술관의 꼭대기 층에 있는 카페 테라스에서는 뉴욕의 서쪽 전경을 볼 수 있었다. 맑고 선선한 바람에 이끌리듯 커피 한 잔을 들고 테라스로 나갔다.


카페 테라스에서 바라본 풍경


뉴욕에 와 박물관과 미술관 몇 군데를 다녀 봤지만, 이 미술관처럼 층마다 넓은 테라스가 있는 곳은 처음이었다. 실내와 실외 공간의 절묘한 조화가 관람의 즐거움을 증폭시켜 주는 듯했다.


미술관 창을 통해 바라본 허드슨 강과 건너편 뉴저지의 모습


1층에 위치한 북 스토어에는 다양한 물건들이 마치 미술관을 축소해 놓은 것처럼 진열돼 있어 또 하나의 전시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가을에 새로 여는 전시들도 있다니 그때 다시 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규모가 크지 않은 대신, 작품과 작가에 대해 깊고 섬세한 감상이 가능한 공간이었다.

지구에 사는 한 중력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이 미술관에 있는 시간만큼은 물 위에 떠있는 듯 하늘에 떠있는 듯 몸도 마음도 가벼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꿈을 품은 박물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