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a Lee Aug 03. 2023

여름 스케치

New York New York 9

옆 동네 공원에 갔다.

롱아일랜드 시티(Long Island City)에 있는 갠트리 플라자 주립공원(Gantry Plaza State Park)이다.

조선소를 비롯한 예전 공장 지대에 위치해 있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게 이 공원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 공원에서 보이는 이스트 강 너머 맨해튼의 모습이 더 마음에 든다.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그리고 맨해튼과 롱아일랜드 시티 사이를 유유히 건너 다니는 페리의 모습이 잘 어울렸다.



어쩌다 보니 여름휴가를 떠나지 못한 내게 이곳은 더할 나위 없는 피서지였다. 오랜만에 맞아보는 시원한 강바람은 ⎯ 나중엔 차갑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 그대로가 위로였다.

공원 한편 잔디밭엔 여름캠프를 온 듯한 어린아이들이 귀여운 노란 안전조끼를 입고 선생님한테서 게임을 배우고 있었다.

전직 데이케어 교사여선지 아이들의 목소리에 자동반응하는 내 감각들을 진정시켜야 했다, ‘워~ 워~.'



버거, 핫도그 등 간단한 식사와 음료를 파는 카페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평일이라 한적했지만 주말엔 아이들과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로 꽉 찰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공원의 야경을 좋아한다고 한다.

나는 구름 멋진 날 빌딩과 강이 만나는 모습에 편안함을 느꼈다. 눈과 가슴에 집어넣기엔 어두운 것보다 밝은 풍경이 더 좋다.

여름의 한가운데, 잔물결이 이는 강을 보며 문득 가을 냄새를 맡은 것도 같다.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표현도 있듯, 물가에 오면 지난날을 혹은 앞날을 가깝고 맑게 온몸으로 느낀다.

가을이 오면 다시 와야지 생각하며 발길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 내 맞은편 자리에 앉은 할아버지 한 분이 독서에 열중해 있었다.

모자와 신발의 매치, 가방과 낡은 책의 조화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벌써 몇 번은 읽었음직한 손때 묻은 책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마치 책과 자신만이 세상에 존재하듯 몰두하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무슨 책인지 궁금해 말을 걸어보고도 싶었지만, 그를 방해할까 봐 호기심을 눌렀다.

주위를 압도하는 그의 모습은 그가 살아온 세월을 보여주는 것일 테지. 옷과 장신구로 겉모습을 덮고, 만들어낸 말투로 속마음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무렇지 않은 세상에서, 어떻게 살면 그처럼 소박한 품위를 지닐 수 있을까.

여유로운 강변의 모습과 아름다운 그의 모습이 신비스럽게 겹치며, 사는 건 그 자체만으로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산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