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집을 나가야 하겠습니다.
승재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역시 집을 떠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아까 동생 승현이랑 과자를 먹다가 한 개 남은 과자를 서로 먹겠다고 싸웠어요.
승재가 제일 좋아하는 과자였는데, 엄마는 승재한테만 양보하라고 하셨어요.
승재는 할 수 없이 동생에게 과자를 주었지요. 그런데 승현이가 엄마 몰래 메롱을 하는 거예요.
승재는 약이 올라 그만 승현이의 머리를 쥐어박고 말았어요. 아주 살짝, 정말 살짝 때렸을 뿐인데 승현이가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리는 거예요.
엄마가 몹시 화를 내며, "승현이한테 사과해!"라고 하셨어요.
승현이가 먼저 약 올렸다고 아무리 말해도, 엄마는 동생을 때리는 게 더 나쁘다고 하시는 거예요.
"미안해." 승재는 승현이에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화가 났어요. 마음속에 몽글몽글 먹구름 같은 게 차오르는 것 같았어요.
'승현이처럼 큰 소리로 울면 엄마가 내 편을 들어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내가 동생으로 태어날걸. 그랬으면 양보 안 해도 되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승재는 기분이 좀 괜찮아졌어요.
승재는 물을 마시고 싶어서 부엌에 갔어요.
싱크대에 그릇들이 가득 쌓여 있는 게 보였어요.
'엄마가 나 때문에 화가 났으니 이제 엄마를 기쁘게 해 드려야겠다!' 승재는 설거지를 하기로 했어요.
먼저 스펀지에 세제를 묻히고 그릇을 닦으려는데, 비눗방울들이 뿅뿅 피어오르는 거예요.
"와, 재밌다!"
승재는 세제를 붓고 또 부었어요. 싱크대에 비누거품이 부글부글 차오르기 시작했어요. 승재는 신이 나서 설거지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어요.
"승재,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때 엄마 목소리가 들렸어요.
엄마는 승재가 싱크대와 바닥까지 온통 비누거품 범벅을 만들어 놓은 걸 보시고는 몹시 화를 내셨어요.
승재가 설거지를 하려 했다고 아무리 말해도, 엄마는 승재의 말을 들어주시지 않았어요.
방에 들어온 승재는 침대 위에 털썩 누웠어요.
"엄마는 나만 미워해." 승재는 억울했어요. 그래서 집을 떠나기로 결심했던 거예요.
승재는 배낭을 꺼내 짐을 싸기 시작했어요. 승재가 좋아하는 공룡이랑 로봇 장난감, 그리고 곰돌이 인형도 넣었어요.
승재는 가방을 메고 살금살금 방을 빠져나와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어요.
그러자 승재의 눈앞에 아름다운 숲 속 풍경이 펼쳐졌어요. 꽃들이 활짝 피고 나무들이 푸른 아름다운 숲이었어요.
얼마나 걸었을까, 승재 앞에 커다란 집이 나타났어요. 지붕은 파랗고, 노란색 창문에는 연두색 커튼이 드리워진 하얀 집이었어요.
승재는 분홍색 문을 똑똑 두드렸어요. 대답이 없었어요.
"아무도 없나?" 승재는 문을 살짝 밀어 보았어요. 그러자 스르르 문이 열리는 게 아니겠어요?
승재는 용기를 내어 집 안으로 들어갔어요.
넓은 거실 한쪽에 따뜻한 불이 피어오르는 벽난로가 있고, 그 옆 테이블에는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 놓여 있었어요.
승재 또래의 아이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었어요. 모두 승재를 반겨주었지요. "여긴 집을 나온 아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야. 너도 우리랑 같이 놀자!"
승재는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나게 놀았답니다. 맛있는 피자랑 치킨도 먹었어요.
어느새 창밖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신나게 놀던 아이들이 하나 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어요. 아빠, 엄마가 보고 싶은 친구, 동생이 보고 싶은 친구, 할머니가 보고 싶은 친구들이 집으로 돌아갔어요. 집에 두고 온 강아지가 걱정돼서 돌아가는 친구도 있었어요. 친구들이 하나둘씩 떠날 때마다 집은 점점 춥고 어두워지는 것 같았어요.
친구들이 모두 떠나고 혼자 남은 승재는 장난감을 꺼내려고 배낭을 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아, 시원하다!"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승재는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어요.
"여기야, 여기!" 목소리는 또 들렸어요. 승재가 조심스럽게 배낭을 살펴보자 배낭 안에서 "덥고 답답해서 기절하는 줄 알았네. 어서 날 꺼내 줘!" 하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그건 바로 곰돌이였어요.
승재는 얼른 곰돌이를 밖으로 꺼내 주었어요. "곰돌아, 어떻게 말을 하는 거야?"
그러자 곰돌이가 말했어요. "여기선 나도 말을 할 수 있지. 우리 뭐하고 놀까?"
승재의 얼굴이 좀 어두워졌어요. "그런데 나... 이제 집에 가고 싶어."
"왜?" 곰돌이가 물었어요.
"엄마가 보고 싶어." 승재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고 말했어요.
"엄마가 보고 싶다고? 엄마가 너만 미워한다며?" 곰돌이가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아냐, 생각해 보니까 엄마는 나를 사랑하시는 것 같아. 유치원 갔다 오면 맛있는 간식도 주시고, 저녁에 잠들기 전에는 나를 꼭 안아주셔." 그런 엄마의 모습이 떠오르니 승재는 더욱 엄마가 보고 싶었어요.
"승현이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궁금해." 승재는 장난꾸러기 동생의 얼굴도 생각났어요.
"승현이는 맨날 떼만 쓰고 널 괴롭히는데도?" 곰돌이가 또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어요.
"그래도 승현이는 나랑 놀 때 게임 규칙도 잘 지키고 내가 좋아하는 공룡 트리케라톱스도 나한테 양보해줘." 승재는 동생이 잘 있을까 걱정되기 시작했어요.
"이젠 정말 집에 가야겠다. 곰돌아, 답답해도 조금만 참아." 승재는 배낭에 곰돌이를 넣으며 말했어요.
"알았어. 그럼 집에 가서 놀자." 곰돌이가 싱긋 웃으며 말했어요.
승재는 배낭을 메자마자 얼른 문을 열었어요. 밖은 벌써 캄캄한 밤이었어요.
승재는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 밖으로 뛰어나왔어요.
그때 어디선가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승재야!"
"엄마, 엄마! 나 여기 있어요." 승재는 엄마를 부르며 달려가기 시작했어요.
갑자기 승재의 몸이 막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제 방에 돌아와 있는 게 아니겠어요?
"승재야, 아까 엄마가 억지로 사과하라고 해서 섭섭했지? 엄마가 승재 말을 잘 들어봤어야 했는데... 엄마가 미안해." 엄마의 미소를 보자 승재는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아냐, 엄마, 나도 동생 때리고 장난쳐서 미안했어요. 엄마, 사랑해."
"엄마도 승재 사랑해."
엄마가 승재를 꼭 안아주셨어요. 승재는 행복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어요.
다행히 승재가 집을 나갔던 건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어요.
승재는 '우리끼리 비밀이야'라는 뜻으로 책상 위에 앉아있는 곰돌이에게 찡긋 윙크했어요.
곰돌이도 승재에게 싱긋 웃어주는 것 같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