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a Lee Aug 30. 2023

자동차와 나

차를 팔기로 했다.

주차에 더 이상 시간과 비용을 낭비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엔 주민 전용 주차장이 없다. 거주 아파트에 주차장이 있다고 해도 사용료가 한 달 $300에서 $400(약 40만 원에서 50만 원) 정도다. 사설 주차장과 비슷한 가격이다.

이사 올 무렵 부동산과 아파트 오피스에 물어보니 길거리 주차가 답이라고 했다. 뉴욕 사는 사람 대부분이 길거리 주차를 한다고. 그런데 더 알아보니, 길거리 주차가 생각보다 까다로워 티켓을 떼이기 일쑤고, 주차할 자리를 찾아 한 시간이 넘도록 집 주변을 뱅글뱅글 돌기를 밥 먹듯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전 문제를 생각해 봐도 선뜻 길거리 주차가 내키지 않았다. 이곳에서 저렴하고 믿을만한 주차공간을 발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결국, 전에 아이들 집을 방문했을 때 이용한 적 있는 사설 주차장에 장기주차 계약을 했다. 한 달 주차료는 흥정에 흥정을 거듭해 380 달러였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이 주차장은 우리 집에서 지하철로 두 정거장 거리라, 차를 쓰려면 지하철을 타고 차가 있는 주차장까지 가야 한다. 마트에서 장을 보면, 우리 집에 물건을 내려놓고 주차장까지 운전해 가서 차를 넣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와야 했다.

게다가 서버브에 살 때와 달리, 여기선 차를 써야 할 일이 거의 없었다. 예전처럼 출퇴근을 하지 않을뿐더러, 차를 갖고 나가면 주차를 하기 위해 주변을 맴맴 돌아야 하고, 주차료 또한 어마어마하게 비싸다. 자연스럽게 편하고 빠른 지하철만 타게 된다. 그러니, 1주일에 한번 쓸까 말까 한 차의 주차료만 물고 있는 셈이었다.

차를 위해서도 우리를 위해서도 이제 그만 이별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운전하는 게 참 좋다. 차에 관심도 많은 편이다.

둘째를 낳고 나서 처음으로 차를 몰아봤다. 겁이 많아 그 흔한 장롱면허도 없다가, 둘째를 낳고 산후 우울감을 제대로 겪고 나서는 그야말로 살기 위해 운전을 배웠다. 이제 아이가 둘이니 정말 집에 묶여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힘은 들겠지만, 어디든 갈 데가 생기면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엄마의 기동력을 발휘하고 싶었다.

무서울 것 같았는데 막상 운전대를 잡고 보니, 내가 살고 있지 못하던 나머지 반쪽의 세상을 만난 기분이었다. 갑자기 내 안에 잠자던 운전 잠재력이 깨어난 듯 차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것처럼 거침없었다.

면허를 따고 나서는 미치게 운전이 하고 싶었다. 운전 강사님에게 같이 가달라고 부탁해, 중고차 경매장에서 생애 첫 차를 샀다. 그리고 미국에 오기 전까지 3년을 알차게 몰았다.


만약 운전할 줄 몰랐다면 미국에서의 적응이 훨씬 더뎠을 것이다. 올해 초까지 십여 년을 살아온 서버브 지역은 대중교통이 희박하고 걸어 다니기도 힘들어 자동차가 다리처럼 쓰이는 곳이다.

아이들 등하교, 방과 후 액티비티, 학교 행사, 친구 집에 갈 때도 부모들이 차로 데려다주고 데리고 온다. 이곳에서 열두 살 미만의 아이들이 혼자 다니는 것은 아동보호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친구들을 내 차에 함께 태울 때도 많았는데, 그들과 이야기하다 자연스레 부모들끼리 만나게 되고 친해지기도 했다. 이야기꽃이 만발하던 자동차 안. 아이들과 차 안에서 보낸 그 숱한 시간들이 그립다.

아이들이 모두 대학 기숙사로 떠나가자 차 안에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좋아하는 노래 목록을 만들어 두고 출퇴근 운전을 하며 늘 들었다. 흥얼대거나 혼잣말을 하거나 때로 남몰래 울기도 하던 나만의 공간, 차는 나의 모든 걸 알고 있을 것만 같은 오랜 친구였다.

중고차 판매 사이트에 우리 차 정보를 올려놓고 연락을 기다리며, 마음이 먹먹했다. 차와 이별할 생각에 심란했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걸까. 도시 생활을 얻은 대신 자동차에게 안녕을 고하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차를 팔고 왔다.

중고차 판매 회사의 연락을 받고 거의 한 시간을 운전해 갔다. 언제나처럼 일 처리가 느리겠지 하던 예상과 달리, 좋은 딜러를 만나 한 시간 반 만에 일사천리로 모든 일이 끝났다.

갑자기 화재경보기가 오작동하는 바람에 직원과 손님 모두가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던 것 말고는, 매우 순조로운 과정이었다.



차 안에 남아있던 물건을 가지러 갔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그동안 내 차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마음속으로 차에게 말해줬다. 이제 낯선 주차장에 외롭게 서있지 말고 좋은 사람 만나 신나게 달리라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꽤 오랫동안 허전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작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