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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Sep 02. 2023

친구들은 여행 중

"까똑! 깨똑! 끼똑!..."

약 올리듯 울리는 메신저 알람 소리. 두 시간째 저런다.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들을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소리다. 백 장은 됨직한 사진들을 정신없이 구경하고 있으려니 덩달아 마음이 붕 뜬다.

그녀들의 옷이랑 날씨가 잘 어울려 사진마다 한 폭의 그림 같다. 경치도 황홀하다.

안 부러울 줄 알았는데. 안 부러울 거라 생각했는데. 안 부럽자고 다짐했는데. 흔들린다, 몹시.


대학 친구들이 2년 동안 살뜰히 돈을 모아 열흘간의 여행을 떠났다. 아기다리고기다리던,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닌, 바로 그날인 것이다.

떠나기 며칠 전부터 여행지 날씨는 어떠냐, 우산은 챙겨야 하냐, 옷은 뭘 가져가냐 등등 단톡방이 시끌시끌하더니 여행을 가서도 요란하긴 마찬가지다.

여행에 합류하라는 그녀들의 속삭임에 나는 넘어가지 못했다. 단체여행이라 중간 어딘가에서 만나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졸업을 앞둔 둘째의 학교 행사에 참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엔 꼭 같이 가자는 그녀들에게, 노매드의 삶을 살고 있는 나는 웃음만 지었다.


나라밖에서 살게 될 거라곤, 그것도 이십 년이 다 되도록 여기서 꾸물대고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살다 보니'라는 말이 살다 보니 현타로 왔다.

여기서 사귀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서울 사는 친구들과 연락할 기회는 줄어드는 것만 같았다. 인간관계 총량의 법칙이었을까.

남편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아이들이 자라나는 사이 서울로 돌아갈 때를 놓치고, 살던 대로 살 수밖에 없었다. 관성의 법칙이었을까.

취직을 하고 바빠지자 한동안 서울에 갈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법칙이었을까.

그러는 동안 서울에 두고 온 내 자리는 세월이라는 먼지로 덮여갔다.

여기 삶에 온전히 속해 보려 열심히 노력하기도 하고, 고향에서의 내 정체성을 확인하려 애쓰기도 했다.

그러나 낀 사람 ⎯ 그게 내 모습인 것 같았다.


여기선 이방인으로 서울에선 객원멤버처럼 지내는 게 웃프다. 여기도 저기도 내 자리가 온전하지 않은 것 같아 쓸쓸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이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여기서의 나, 고향에 갔을 때의 나, 모두 내 온전한 모습이라 여기기로 했다.

지금의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나이기도 하니까.

 

"까똑! 깨똑! 끼똑!..."

다시 시작된 친구들의 부르는 소리. 거긴 잘 시간일 텐데 사진 보내느라 잠도 설치나 보다.

사진 속 친구들의 환한 웃음이 이제 막 피어난 꽃송이처럼 예쁘다. 그녀들의 웃음소리가 그립다.

다음 여행엔 나도 사진 속에서 함께 웃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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