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이야기

도서교환대 10

by Anna Lee

산드리나의 지난 1년간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미카는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못했다.

마음속엔 온통 격랑이 이는 듯했지만 몸은 마비된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

미카가 건넨 책을 쥐고 있던 산드리나의 손이 아주 잠깐 떨리는 게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




미카는 산드리나가 초대한 저자 사인회에 갔다.

장사진을 이룰 정도는 아니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작가를 보러 왔다. 사인회 후 책 소개와 짧은 강연이 이어질 때도 오십 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자리를 지켰다.

미카도 작가와 악수를 나누고 친필 사인이 담긴 책을 소중히 에코백에 넣었다.

산드리나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강연 장소를 정돈하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혹시 방해가 될까 봐 먼저 다가가지 않은 미카에게 산드리나는 눈이 마주치자 찡긋 윙크를 날렸다.

사실, 미카의 에코백 안에는 도서교환대에서 가져온 책도 들어있었다. 산드리나와 이야기할 기회가 생긴다면 책에 대해 물어볼 생각이었다. 산드리나가 자신을 스토커로 오해하지 않을지 혹은 집착이 심한 사람으로 치부하지 않을지 걱정이 되긴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신경 쓰이는 일을 물어보지 않고 꾹 참고 있는 것도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어보지 않았다가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도 않았다.

강연이 끝난 후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미카에게 산드리나가 다가왔다.

"나 지금 퇴근 가능한데 찬 한 잔 할래요?"


둘은 동네 작은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의 대화가 책 사인회 뒷 이야기에서 강아지 쿠키 이야기로 옮겨갈 때쯤, 미카는 가져온 책을 가방에서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실은 저번에 만났을 때 책갈피에 끼어있던 주소를 찾아간 거였어요. 혹시 찾고 있던 책이라면..." 그녀는 말을 채 끝마칠 수 없었다. 책을 쳐다보는 산드리나의 눈에서 순간 반짝이는 광채 같은 걸 보았기 때문이다.

"이거... 어디서..." 산드리나는 웃음기 가신 얼굴로 미카를 바라보았다.

역시 모른 체하는 게 나았을까, 산드리나에게 자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을까, 미카의 가슴이 세게 뛰기 시작했다.

미카는 도서교환대에서 책을 가져온 것과 책 속에서 우연히 주소를 발견한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미카의 이야기를 들으며 산드리나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어리기 시작했다.

"줄리안의 책이에요. 이거 봐요." 산드리나는 책의 마지막 장을 펼쳐 미카에게 내밀었다. 페이지 끄트머리에 작은 초록색 글씨로 '줄리안, 2017'이라고 적혀 있었다.

"고등학교 입학한 해에 내가 선물로 준 책이거든요."


그리고 산드리나는 줄리안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차분했다.

석 달의 여행이 그녀에게 내린 자비 덕분이었다.




며칠 후 산책길에서 만난 두 사람은 나뭇잎이 막 가을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길을 나란히 걸었다.

잠시 후 미카가 말했다. "내 이야기 들어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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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 지명, 사건은 허구입니다. 실제 인물이나 장소와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