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도서교환대 9

by Anna Lee

줄리안의 장례식이 끝나고 나서도 산드리나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아이의 흔적들을 차마 견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부모님 또한 혼자보다 함께 있는 게 나을 거라며 그녀를 붙잡았다.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여름이 다 가고 땡스기빙이 돌아오도록 그녀는 그 자리에 머물렀다.

줄리안은 땡스기빙에 기숙사를 잠시 벗어나 집에 왔겠지, 어쩌면 대학에서 사귄 여자친구를 데려올 수도 있었을 텐데 ⎯ 산드리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견딜 수가 없었다.

줄리안이 곁에 있었다면 당연했을 일들, 누구나 겪는 흔한 일상이 이제 자신에게 다시는 없을 거라는 사실이 그녀를 짓누르듯 했다.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그녀는 여행을 떠났다.

슬픔을 감당하기 힘들 때 부모님 옆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힘든 자신을 지켜보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있기가 하루하루 괴로워졌다.

혼자 있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고, 그랬다면 일어서기가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고, 그녀의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차라리 낯선 곳을 택한 이유였다.

어떻게든 일어서보려는 자신을 스스로 아는 척해주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위로가 됐다.


그렇게 홀로 떠난 여행이 터닝포인트가 될 줄 산드리나는 알지 못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그녀는 오래전 북클럽에서 읽은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Eat Pray Love>를 떠올렸다.

길고 힘겨운 이혼 끝에 선택한 여행은 작가의 삶을 흔들고 바꿔놓았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이 곧 당신입니다. 당신의 감정은 생각의 노예이고, 당신은 감정의 노예이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은 작가가 정신적인 여행을 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산드리나는 생각했다. 이태리, 인디아, 인도네시아는 작가의 내면에서 오직 그녀만의 유일한 공간이 된 것이다.

산드리나는 집이 아닌 낯선 곳에서 비로소 자신과 대면하고 있었다.

<Eat Pray Love>의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산드리나도 여행에서 자신의 인생이 온통 흔들리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후 자신의 삶이 어떻게 될지는 오직 신만이 알 거라고 생각했다.


그 3개월의 시간이 그녀에게는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여행은 사람의 마음을 너그럽게 만들어 준다. 이거 아니면 죽을 것 같던 일도 다른 공간, 다른 환경에서는 꼭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그녀는 눈으로 몸으로 체득했다.

두 번이나 소중한 사람을 잃었지만 그녀는 끝내 자기 자신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줄리안이 살던 곳, 자신의 삶이 숨 쉬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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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 지명, 사건은 허구입니다. 실제 인물이나 장소와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