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a Lee Oct 26. 2023

뉴욕 속의 한국 미술

New York New York 12

맨해튼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에 갔다.

Solomon R. Guggenheim 재단은 1937년 설립되었고, 1939년 뉴욕에서 구겐하임 미술관의 첫 번째 전시회가 열렸다.

이 미술관의 독특한 나선형 건물은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1867-1959)의 작품이며, 1959년 완공됐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현대미술 작품들을 전시하며, 특별전 또한 1년 내내 열린다.

다음 전시 준비로 미술관의 일부가 닫혀 있는 대신 입장료를 50 퍼센트 할인받았다. 이번에 미술관에 간 목적은 특별관에서 성황리에 열리고 있는 우리나라 작가들의 전시를 보기 위해서였다.

바로, 내년 1월까지 계속되는 젊은 그들: 한국 실험미술 1960-1970년대(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이다.


이 전시에서는 한국 실험미술에서 비롯된 *아방가르드(avant-garde) 미술작품을 볼 수 있다.

한국전쟁(1950-53) 직후 세대인 젊은 미술가들은 1960년대 중반부터 예술의 새로운 길을 함께 모색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인쇄매체의 시각언어와 만나게 되면서, 이들 미술가들은 전통적인 페인팅, 조각의 경계를 재정의하고 행위, 설치, 사진과 비디오를 통해 진보적이고 도발적인 미술에의 접근법을 수용했다.

장르에 저항하던 그들의 작업은 1970년대 말부터 서서히 쇠퇴하다가, 2000년대 초 영향력 있는 미술사가(art historian) 김미경에 의해 '실험미술'이라 명명된다.

한국의 1960년대와 1970년대는 1961년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 북한과의 긴장 상황, 일본과의 관계 개선, 베트남 파병 등으로 격동의 시대였다. 동시에 급격한 도시화, 중산층의 성장, 외국 문화의 유입과 내셔널리즘과의 충돌, 억압적인 검열의 증가 등으로 사회적으로도 큰 변화를 맞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들 실험 미술가들은 살아있는 역사, 세계와 연결된 성장의 주역으로서의 관점을 잃지 않고 로컬과 일상에 뿌리를 둔 표현을 발달시키며 국제적인 아방가르드의 중심에서 활동했다.


이건용, 심문섭, 이강소, 박현기 등은 파리에서 국제 아방가르드의 대표적인 사례로 받아들여졌다. 이들 미술가들이 지정학적 확대와 문화의 중심을 이루었다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이론들과 그 시대 새롭게 대두됐던 세계적인 미디어 네트워크를 통해 입증되었다.

  

Untitled 75031, 이강소, 1975/2016


위 작품 <Untitled 75031>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의 자신의 주관에 대한 인식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이강소는 말했다.

1974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처음 설치된 이 작품은 존재의 무상함, 변형, 유동성에 대해 숙고한 것이라 한다. 최초의 전시에서는 그 지역 사람한테서 닭을 빌려와 짚으로 만든 매트 위의 나무 사료통에 밧줄로 묶고, 바닥에 뿌려놓은 하얀 가루 위에서 닭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이후 전시에서는 닭이 주인에게 돌아가고 나서 남은 흔적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과거에 잃어버린 것을 말하고 있다. 닭에 가해진 물리적인 제한과 그 후 닭의 궁극적인 실종은 한국 시민들을 억압한 박정희 유신독재의 검열을 은유한 것이다.


Work 74, 여운, 1974


정부를 비판한 동아일보 편집자들을 블랙리스트에 포함시키는 등의 부정부패 스캔들은 국내 정세를 몹시 불안하게 했다. 위 작품 <Work 74>의 창문 안에는 외국 정치가들, 누드의 여인들, 사치품 등을 담은 삼류 잡지의 소비자 이미지뿐 아니라, 당시 사회 현실을 정확히 보도하지 못하게 된 전통 신문들의 기사가 갇혀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Scissors(1974), *Naught No.5(1974), Naught No.3(1974), Naught No.4(1974), 신학철


세계전도(An Upside-Down Map of the World), 성능경, 1974


성능경은 다른 어떤 실험미술가들보다 현실에 기반을 둔, 의도적으로 구상한 작품의 힘을 보여주었다.

그의 작품 <세계전도>에서, 그는 지도의 틀만 남겨놓고 삼백 개의 조각을 오려냈다. 그러고 나서 같은 크기의 조각들을 무작위로 배치해, 무의미하고 읽을 수 없는 지도를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우리가 수세기에 걸쳐 알고 있던 지정학적, 문화적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세계를 재창조하려 했다.

당시 극심한 정부의 감시와 언론 통제가 행해지던 가운데, 성능경의 작품들은 삭제의 폭력에 대항해 현실의 모순을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Newspapers: After 1st of June 1974, 성능경, 1974


ST(Space and Time; ST 조형예술 그룹) 멤버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성능경은 커팅 기법을 이용해 한국정부가 대중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것에 저항했다.

위 작품 <Newspapers: After 1st of June 1974>에서 그는 특히 1970년대 박정희 정부의 언론 통제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이 전시됐던 3차 ST 전시회 6개월 후, 동아일보가 실제로 모든 광고면을 공백으로 신문을 발행함으로써 성능경의 선견지명이 증명되었다. 이는 동아일보가 정부의 언론 통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자 정부가 광고주들에게 동아일보에 광고를 제공하지 못하게 한 강압적인 조치에 대한 조직된 저항이었다.


Take Cover 1,2,3,4,5, 송번수, 1974


1970년대의 한국은 북한과의 긴장뿐 아니라, 공해, 질병, 억압 등의 지속적인 위협 아래 있다고 송번수는 말했다.

<Take Cover 1,2,3,4,5>에서 그는 불길한 느낌을 주는 마스크와 공습 사이렌 경보시스템의 색 ⎯ 노란색은 경계경보, 파란색은 공습경보, 초록색은 해제경보 ⎯ 을 반복적으로 나타냄으로써 환경의 변화에 대해 환기시키려 했다.


Seoul(김한용,1966), Untitled(이승택,1960), Short Pants(임응식,1971), Scream(임응식,1960), Untitled(이승택,1964)


한국 아방가르드 협회(Korean Avant Garde Association; AG)는 서울에 기반을 둔 예술가와 비평가 그룹을 중심으로 1969년 12월 창립됐다. 이들은 아방가르드 예술을 향한 강한 자각을 바탕으로 한국 예술계에 새로운 질서를 창조해 냈다.

AG는 1970년에서 1975년에 걸쳐 모두 네 번의 전시회를 열었다. 하종현, 송번수, 이승조 등과 이강소, 이건용 등은 그들이 가진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연대를 통해 진정한 아방가르드 예술을 추구했다.


Kiss Me, 정강자, 1967


위 작품 <Kiss Me>는 현대사회에서 여성이 갖는 어머니의 의무, 정절, 가족에 대한 헌신을 말하고 있다.

정강자의 작품에서 여성의 신체는 그것이 전신이든, 부분이든, 독재적인 한국사회에서 쓰인 순결과 오명이라는 이분법적 잣대에 저항하고 있다.


나라밖에서 본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과 여기저기 보이는 한글에 반갑고도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지난 몇 년 동안 K-pop과 한국영화, 드라마 들에 쏟아지는 찬사와 열광을 봐왔던 터라, 이젠 당연한 듯 덤덤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뿌듯함은 오래 남았다.

시대의 아픔을 담아낸 작품이 대부분이었기에, 작품을 감상하는 많은 사람들의 진지한 태도와 눈빛은 적잖은 감동이었다. 모두 50여 년 전 탄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뉴욕 한복판의 미술관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진보적이고 독창적인 작품들이었다.


억압과 폭력이 난무하던 시대, 예술가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가장 자신들 다운 방법으로 저항한 그들을 향한 존경심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 그 시대 치열했던 예술가들의 삶과 오늘의 나는 어떻게 연결돼 있을까. 펜을 쥐고 있는 나는,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나는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표현 수단을 소유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품위 있게 산다는 건 값비싼 음식을 먹고 고급스러운 물건을 지니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진짜 품위는 약자를 돌아보는 마음, 불의에 대항하는 몸짓, 그리고 나누는 삶임을, 그들 예술가들은 몸과 혼을 다해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래층에서 올려다본 미술관 천장
위층에서 내려다본 카페와 기프트샵


✱ 아방가르드(avant-garde): 예술, 문화, 사회에 대해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작업이나 작가

✱ Naught: zero(0), nothing


매거진의 이전글 다르니까 귀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