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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Dec 25. 2023

옛것과 새것의 공존

New York New York 13

뉴욕의 거리 여기저기에는 크고 작은 서점들이 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채 그 지역의 특성을 담고 있는 독립서점들이 많다고 한다.

할 수 있는 한 많은 서점을 다녀보며 뉴욕의 또 다른 모습을 포착하고 싶어졌다. 어느 곳에 어떤 이야기를 품은 서점이 있을지 벌써부터 설렌다.


며칠 전 맨해튼 이스트빌리지에 있는 스트랜드 서점(Strand bookstore)에 갔다.


할인된 가격에 책을 판매하는 서점 앞 가판대


스트랜드 서점은 1927년 'Book Row(책의 거리)'라 불리던 4번가에서 탄생했다.

기업가가 꿈이며 독서를 좋아하던 지식인 청년 벤 배스(Ben Bass)는 25세 때 자신이 가진 300 달러와 친구에게서 빌린 300 달러로 중고 서점을 열었다. 그는 새커리(Thackeray), 디킨스(Dickens), 밀(Mill) 등의 아방가르드 작가들이 모이고 출판사들이 성황을 이뤘던 런던의 거리 이름을 따 자신의 서점 이름을 지었다.

스트랜드 서점은 작가들이 모여 자신의 책을 팔거나 숨겨진 보물 같은 책들을 찾아내 구입하는 그리니치빌리지의 명소로 빠르게 성장했다. 오늘날 스트랜드는 지난날 화려했던 Book Row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서점이 됐다.


벤의 아들 프레드는 13세부터 가족 비즈니스를 배웠으며, 군 복무를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함께 일했다. 1957년 프레드는 스트랜드 서점을 지금의 위치인 12번가로 옮겼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판매대에서 일하며 단골손님들과 친밀한 관계를 이어갔고 중고서적을 수집, 거래했다.

지금은 프레드의 딸 낸시가 3대째 서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그녀의 자녀들이 스트랜드의 미래가 될 전망이다.


스트랜드가 보유하고 있는 250만 여권의 책을 모두 늘어놓으면 18 마일(약 29 킬로미터)이 된다 하여 '18 마일의 책들(18 miles of books)'이 캐치프레이즈가 될 정도로 뉴욕에서 가장 큰 신간, 중고, 희귀본의 집대성이 바로 스트랜드 서점이다.

  

입구에서부터 펼쳐진 1층의 모습


서점을 방문한 날은 마침 산타콘(Santacon) 축제일이었다. 매년 크리스마스 2주 전 토요일인 산타콘 데이에 사람들은 산타클로스 옷을 입고 주점이나 바에서 술을 마신다.

음료를 무료로 제공하는 곳도 있어 바 앞에 장사진을 이룬 산타들의 행렬을 볼 수 있었다. 근처에 NYU(New York University)가 있는 데다 축제일이라 서점도 덩달아 붐볐다.



서점 입구에 책으로 만든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다. 화보 속에나 있을 듯한 트리를 직접 보니 판타지 세상에 와있는 것 같았다.

다양한 크리스마스 카드를 구경하며 보내줄 이를 위해 카드를 고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다웠다. e카드나 SNS가 대세인 요즘, 종이카드는 고르는 이에게도 받는 이에게도 특별한 촉감을 선물할 것이다.



어린이책과 예술, 요리, 패션 관련 서적이 즐비한 2층은 1층보다 덜 붐비긴 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을 피해 사진을 찍기가 쉽지 않았다. 우연찮게 모델이 돼준 그들이 고맙다.



소개팅 코너다. 서점 직원들이 책을 포장한 후 그 책에 대한 짧은 소감이나 설명만 붙여놓는다. 사람들은 저자나 제목을 모른 채 이 글귀만 보고 책을 선택한다.

사진의 뒷줄 오른쪽 책에 '서울에서 펼쳐지는 판타지 로맨스, K드라마 팬에게 안성맞춤'이라고 붙어있다. 뉴욕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서울의 사랑이야기라니, 멋지다!  

책과의 소개팅(blind date with a book) ⎯ 정말이지 설레지 않는가.



3층에서는 오래된 책들과 희귀본, 저자의 오리지널 서명이 담긴 책을 판매하거나 대여한다.

고서가 가득한, 마치 영화 속 도서관을 보는 것 같았다. 스트랜드 서점의 역사가 숨 쉬는 곳이기도 하다.

 


책을 사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게 되는 계산대 옆에는 서점의 2대 주인인 프레드의 흉상이 놓여 있었다. 그의 모습을 새긴 동상을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 가까이 둔 건 손님들에 대한 그의 애정 어린 마음을 기리기 위함이었을까 생각했다.


대를 이은 가업으로 96년 동안 운영돼 온 스트랜드 서점. 긴 세월을 지나오며 위기도 어려움도 셀 수 없이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의 거리 한 모퉁이에 꿋꿋하게 자리매김하고 방문객들을 따뜻하게 품어올 수 있었음은 책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의 꿈과 희망 덕분에 나는 오늘 오래된 책들과 조우하며 또 다른 꿈을 꾸게 된다. 과거의 작가들이 꿈꾸던 미래를 내가 살고 있듯, 지금 내가 꿈꾸는 미래에도 책과 사람들은 그 만남을 계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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