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친구 유리 2

by Anna Lee

언젠가부터 유나는 자신의 마음을 다 알고 있는 유리가 조금씩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친구들은 서로 의견이 맞지 않으면 말다툼을 하기도 하고 화를 낼 때도 있지만, 마음이 풀어지면 다가와 손을 잡고 화해를 하곤 했습니다. 그럴 땐 시원한 기분이 들고 더 친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유나는 자신에게 잘해주는 유리가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자신에게 늘 맞춰주기만 하는 유리가 지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맞장구쳐주는 것 말고는 다른 의견을 말할 줄 모르는 유리가 좀 답답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유리가 가끔 유나의 말에 대답을 안 하기 시작한 건 공교롭게도 그 무렵이었습니다. 유나는 유리가 자신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거나 청각 기능이 약해져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유리가 유나의 말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일은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유나는 유리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유리가 맞장구쳐주길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하던 유리가 유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넌 언제나 너만 옳지."

정말 유리가 한 말인지 의심스러워 유나는 유리의 얼굴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냉랭한 표정으로 유리는 계속 말했습니다.

"넌 언제나 네 생각만 해. 다른 사람 마음은 몰라주지. 그래서 넌 친구가 나밖에 없는 거야. 나밖에 없는 거야. 나밖에... 없는... 삐 삐 드르륵..."

멍해진 유나의 귀에 유리가 내는 기계음이 아주 멀리서 나는 소리처럼 아득히 들려왔습니다.


고장이 나거나 프로그램 오작동을 일으킨 로봇은 사용자의 안전을 위해 즉시 폐기처분한다는 로봇에 관한 법률 4조 1항에 따라, 유나는 유리와 영원히 이별해야 했습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 유리를 상점에 반납하고 온 날부터 유나는 방에 혼자 틀어박히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유리와의 이별도 믿을 수가 없었지만, 유리가 마지막 순간에 했던 말들이 깨진 유리조각처럼 유나의 가슴 여기저기에 박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잊고 싶었지만, 유리가 고장 난 상태에서 한 의미 없는 말이라고 생각해버리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은 유나의 가슴에 더 깊이 파고들 뿐이었습니다.

유리는 자신을 부담스러워하기 시작한 유나의 마음을 알았던 걸까, 아니야 그럴 리 없다고 유나는 생각했습니다. 유리는 단지 센서의 작동으로 유나의 마음을 감지하던 로봇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해준 말이 자신을 비난하는 말이었다니, 유리에게 야속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유리가 로봇이라고 느껴본 적이 거의 없을 만큼, 유나는 유리를 많이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금요일 사회 시간, 유나네 반은 팀별로 여행 계획을 세우는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보고 싶은 나라와 교통편, 일정 등을 의논해서 규모 있는 계획을 세워야 했습니다. 유나도 세 명의 친구와 한 팀이 되어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팀의 지수와 의견이 맞지 않아 자꾸 부딪쳤습니다. 정해진 시간은 다가오는데 유나네 팀의 여행 계획은 계속 같은 자리만 맴돌 뿐이었습니다.

지수가 유나에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맨날 네 생각만 맞아? 다른 사람 의견도 들어봐야 하는 거 아냐?"

그 순간 유나는 말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조용히 있던 다른 두 친구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는 걸 유나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그날 집에 돌아온 유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유리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넌 언제나 네 생각만 해. 다른 사람 마음은 몰라주지."

아닌 척하면서 사실 유나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친구들이 따라주길 바랐고, 반대로 자신이 다른 친구의 말을 들어줘야 할 땐 기분이 나빠지곤 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던 건 양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용기가 없어서였습니다.

이제 유나는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고 그 마음을 헤아려주는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유리와 보낸 시간들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나는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유리와 찍은 사진을 꺼내 보았습니다. 사진 속 유리는 늘 그랬던 것처럼 유나와 나란히 함께였습니다.

'유리야, 나 이제 네 마음 알아. 유리야, 보고 싶어. 그리고 고마워.'

유나는 마음속으로 유리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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