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아직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다.
뭐 대단한 건 아니고, 그저 나 혼자 간직해 온 이야기일 뿐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동안 이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썼던 것 같다. 이 이야기를 빼면 나의 유년시절은 빛바랜 헝겊조각처럼 볼품없어져 더 이상 특별하게 여겨지지 않을 것 같아서였는지도 모른다.
소중히 지켜 온 기억들이 흩어지기 전에, 이제 그만 내 안에서 꺼내어 보물상자와도 같은 글에 옮겨 담기로 했다. 그리고 이 보물상자를 열어볼 때마다 선물을 받는 것처럼 행복해지고 싶다.
나는 어릴 때 몸이 약했다.
탯줄을 목에 감은 채 엄마 몸에서 엉덩이부터 거꾸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내 몸이 무척 작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기 때 작다는 건 곧 몸이 약하다는 뜻이다. 약하게 태어났기에 살아서 세상 빛을 볼 수 있었으니, 내 삶의 아이러니는 출생과 동시에 시작된 셈이다.
친가 외가 양쪽 집안을 통틀어 첫 손녀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데 나몰라 할 어른은 없었다. 몸에 좋다는 음식이며 보약은 다 내 차지였다. 비린내가 진동하는 잉어 고은 물부터 횟집을 운영하는 할아버지 친구분이 보내주신 구운 생선뼈까지, 나는 온갖 해괴한 음식들을 꾹 참고 먹어야 했다.
그러나 어른들의 극성에도 늘지 않는 내 체중만큼이나, 내 마음은 언제나 헛헛했다.
내가 받던 관심은 나와 세 살 터울인, 정확히 나보다 2년 5개월 늦게 태어난 남동생에게로 넘어갔다.
엄마 아빠가 더 이상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는 느낌, 누군가와 엄마 아빠를 나눠야 한다는 건 내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게다가, 부모님은 내게 동생을 잘 돌봐줘야 한다고 늘 말했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집에 들어와 엄마 아빠를 빼앗아간 아이를 보살펴주기까지 해야 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이대로 엄마 아빠에게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몰려왔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동생처럼 하면 사랑받을까 싶어 아기처럼 떼쓰고 울어 보았다. 장난감을 몽땅 차지해 동생을 울리기도 했다. 투명인간 같은 내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았다.
그러나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아웃사이더가 돼갔다.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부터 엄마한테 혼나는 횟수가 늘어났다.
육아에 지쳐있던 엄마는 미운 짓만 골라하는 나를 받아줄 여유가 없었다. 퇴근하고 집에 온 아빠에게 엄마는 그날 내가 부린 말썽들을 늘어놓으며 혼내주라는 말까지 덧붙이곤 했다.
그 무렵 나는 그림 그리기에 온통 정신을 빼앗겨 있었는데, 아침에 눈뜰 때부터 종이를 찾기 시작해 저녁에는 볼펜이나 색연필을 손에 쥔 채 잠이 들었다. 종이만 보면 닥치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사람, 집, 태양, 반달, 강아지, 고양이 등 소재는 얼마든지 널려 있었다.
집에 누군가 놀러 오면 붙들고 그림을 그려달라 당당히 요구했다. 내가 재미있으니 그도 분명 재미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계속되는 나의 그림 요구가 귀찮아 슬슬 피하는 어른들을 보며, 재미있는 게 사람마다 다르구나 깨닫기 시작했다.
✶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