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과 열쇠를 챙겨 집을 나섰다. 산책도 하고 과일가게에 신선한 과일이 뭐가 있나 기웃거려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커피도 한 잔 사기 위해서였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공기 속에 햇살이 가득했다.
잰걸음으로 지나는 사람들과 산책 나온 사람들의 여유로운 발걸음이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여기저기 건물의 창과 지붕에 반사된 햇빛이 부셔 눈이 저절로 감겼다. 동네 이름에 '해가 잘 드는'이란 말이 들어갈 만하군 생각이 들었다.
조금 일찍 나갔을 뿐인데 거리는 사뭇 다른 분위기 다른 냄새를 머금고 있었다. 신기했다.
얼굴 가득 늦가을의 햇살이 담기는 순간이 언제까지나 계속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분을 간직하고 싶어서 ⎯ 어쩌면 그것 때문에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영원히 계속되는 것도, 멈출 수 있는 것도, 변하지 않는 것도 없기에 더욱 글로 남기고 싶은 것일까. 뭔가를 꽉 붙잡고 놓지 않고 싶은 마음 때문에 하얀 공간과 마주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자꾸만 흘러가는 세상 속에 나만 정지된 듯 가만히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글을 쓰고 싶다. 나중에 읽어보면 그때의 감정, 분위기, 내가 했던 생각이 마치 종합선물세트처럼 한꺼번에 되살아난다.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뭔가를 붙잡고 싶은 마음 ⎯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끊임없이 저항할 운명인가 보다. 사람이기에 세상과 결이 다른 천성을 타고났나 보다. 그래서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하는 걸까.
머릿속을 지나는 생각을 붙잡아 글로 옮길 때, 비로소 그 생각은 형체도 의미도 갖게 된다. 그런데 생각을 글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창작이라는 지난한 작업, 글쓰기가 소중한 이유이기도 하다.
멈추고 싶을 때 한 발만 더 나아간다면,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 둘 게 아니라 미친 듯이 매달리고 절실하게 붙잡는다면, 나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추억이 되어버리기 전에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사는 것이다. 그리고 기록하는 것이다. 마음에, 여백에, 미래의 시간에.
그래서 나는 글쓰기를 중단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쓰기 싫을 때도, 연재가 부담스러울 때도, 귀찮아 미룰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쓰는 걸 내 생활에서 끊어내진 못할 것 같다.
글은 삶과 같아서, 그 자체가 수단이 아닌 온전한 의미라서, 살아있는 한 뭐라도 쓰고 있을 것 같다.
오랜만에 한국 분이 운영하는 카페에 들러 달고나 라테를 샀다. 집에 오는 길에 다시 햇살을 뒤집어쓰고 홀짝홀짝 커피를 마셨다.
쓰디쓴 커피에 점점 달고나의 단 맛이 배이듯, 내 마음에도 글쓰기의 달콤한 유혹이 언제까지나 깃들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