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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Dec 05. 2023

꽃을 바라보다

몇 주 전부터 크캑(내가 붙여준 크리스마스 캑터스의 애칭)이 심상치 않았다.

화분에 물을 주다 꽃봉오리를 다섯 개나 발견했다. 아직은 작은 봉오리지만 머잖아 꽃이 필 것 같았다.

마치 단 하나의 불꽃을 사르듯 온 힘을 다해 한 송이를 피웠던 게 일곱 달 전인데, 이번엔 다섯 송이를 피우려나 보다.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 부모가 자식의 성공을 보는 마음이 이런 걸까. 괜히 미안하고 고마웠다.

아침마다 크캑멍을 하고 있다.



꽃봉오리가 맺힌 지 일주일 만에 붉은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냥 붉다기보다, '다홍'이란 말이 꽃의 색에 가장 가까울 것 같다.

꽃잎이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별 모양이 된다. 바라보고 있으려니 너무 사랑스러워 몸이 노글노글해지는 기분이다.

나머지 네 개의 봉오리도 입을 벌려보려 애쓰는 게 느껴진다. 꽃을 피우려는 그들의 아우성이 들릴 것만 같다.

크리스마스 무렵에 꽃이 핀다고 해 크리스마스 캑터스라 불린다더니, 정말 크리스마스를 한 달 앞두고 꽃을 피우고 있는 게 신기하다.

꽃에 대한 어떤 클리셰도 크캑 앞에선 새롭기만 하다.



매일의 일상이 같은 듯하면서 다르듯, 꽃도 그렇다. 같은 듯하면서 하루하루 다르다.

사진을 찍다 말고 크캑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수줍게 삐죽 내밀던 꽃잎이 이젠 활짝 피어나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 같다. 젖혀진 꽃잎이 연한 나비의 날개를 닮았다. 꽃은 비상하기 직전의 에너지를 가득 품고 있는 듯하다.

꽃말 '불타는 사랑'처럼 그 열정적인 자태에 눈이 부시다. 활짝 핀 꽃잎이 레이스가 겹겹이 나풀대는 플라멩코 댄서의 치맛자락 같다.


나머지 봉오리가 모두 피어나면 크리스마스는 더욱 다가와 있겠지.

크캑 덕에 날마다 기다림을 겪고 있다. 기다림 ⎯ 내가 가진 거의 모든 감정을 다 동원하는 일인 것 같다.

그 어떤 감정도, 그 얼마만큼의 감정도, 기다림 앞에선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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