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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Dec 13. 2023

비움의 계절

미니멀리즘을 지향해 본 적은 없다. 미니멀리스트라 불리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엿보며 나랑 비슷하네 느낀 적이 있을 뿐이다.

내가 좀 이상한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 건 결혼하고 나서부터다.

주말이나 명절에 아버님어머님 댁을 방문하고 나서 돌아서는 길, 어머니는 남은 음식과 김치 등을 잔뜩 싸주시곤 했다. 나는 김치나 고춧가루처럼 꼭 필요한 게 아니면 한사코 받지 않으려 했다. 그런 내게 어느 날 어머니가 상기된 표정으로 "너 진짜 이상한 애다" 하고 말씀하셨다.

결혼 후 8년 만에 동서가 생겼다. 그녀는 성격도 생활방식도 신기하리만큼 나와 정반대였다. 어머니가 챙겨주시는 것보다 늘 더 달라고 하고, "형님 안 가질 거면 제가 가져가도 되죠?" 하며 내 몫을 후딱 집어 들곤 했다.

어머니는 그래도 뭐라도 꼭 주고 싶으셨는지 나보고 가져가고 싶은 걸 미리 찜해 놓으라고 하시는가 하면, 어느새 슬그머니 남편 손에 음식 보따리를 들려주시기도 했다.

쓰시던 가구를 물려주려는 어머니께 "저희는 둘 데가 마땅찮아요. 동서네 주세요" 했다가 "너 진짜 이상한 애다" 소리를 또 얻어들었다.


아직 아이 없이 맞벌이 중이라 남편과 같이 밥 먹을 시간이 별로 없을 때였다. 남은 음식이 냉장고에 들어앉았다가 그대로 우리 집을 떠나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언젠가부터 내게 산만한 구석이 있다는 걸 깨닫고 집에 물건을 너무 많이 두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뭐가 많다는 건 곧 관리해야 할 게 많다는 의미고, 덤벙대는 내겐 시간이 많이 쓰이는 괴로운 일이다. 청소하기를 매일 아침 이 닦고 세수하는 것만큼이나 귀찮아하는 나는 될 수 있으면 쓸고 닦을 물건들을 들이지 않으려 한다.

나는 물건을 잘 버린다. 이런 나를 꽤 아는 아이들은 찾던 게 안 보이면 대뜸 내게로 달려와 "또 엄마가 버렸지!" 하곤 해서 억울한 적도 많았다.

하우스에서 살다 아파트로 이사 나오며 살림의 삼분의 이 정도를 헐값에 팔거나 기부했다. 아이들이 다 자라 품을 떠난 뒤라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빈 둥지는 쓸쓸했지만 한편으로는 시원하기도 했다. 남편과 둘이 이사한 아담한 집에서 오랜만에 홀가분한 기분으로 두 다리 쭉 뻗고 잤다.


나는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말이 좋다. 늘 완벽하게 다 갖추고 살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뭔가의 부재를 다른 것으로 교체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싶다. 상상력이나 창의력, 유연함이 없이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냉장고를 모두 파먹고 나서 굶기 직전에야 비로소 마트에 간다. 냉장고가 그득하면 부담스럽고, 잊고 있던 식재료가 상할까 봐 불안하다.

냉장고를 들여다보며 먹을 게 없다고 불평하는 남편의 모습이, 옷장을 들여다보며 입을 게 없다고 말하는 내 모습 같아서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발가벗고 밖에 나가지 않는 것처럼, 남편을 굶겨본 적도 없다.


나의 공간이 뭔가로 꽉 차 있으면 답답하다. 누군가 볼품없다고, 초라해 보인다고 할지라도 나는 빈자리가 좋다. 채우기 위한 빈자리 말고, 그냥 비어있는 빈자리가 마음에 든다.

바야흐로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빈 방이 없어 가축의 먹이통 안에 누였던 아기 예수가 온 날이다. 보잘것없던 구유는 그가 누임으로 그날밤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자리가 되었다.

나무들이 자신을 비우는 계절이기도 하다. 여름 가을 내내 풍성했던 삶의 자리, 새들의 포근한 휴식처가 돼 준 그들의 하늘 향해 뻗은 팔에서 홀가분함이 보이는 건, 자유함에서 나오는 그들의 깊은 숨소리가 들릴 듯하는 건, 내가 정말 이상한 아이라 그런 걸까.

나의 공간, 나의 마음에 빈자리를 만들고 싶다. 나 아닌 누군가를 위해 비워두어도 좋을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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