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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Apr 28. 2022

몬테소리 교육이 놓치고 있는 것들 1

Jessica Winter의 저널을 읽고

몬테소리 교육에 대한 저널을 읽었다.

⟨마리아 몬테소리의 잘못된 교육; 그녀의 교육법은 대중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특권이 되었다. (The Miseducation of Maria Montessori; Her method was meant for the public. Then it became a privilege.) - By Jessica Winter, 2022. 3. 3, The New Yorker⟩라는 저널이었는데,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몬테소리 관련 책이나 저널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쓴 것이어서 흥미로웠다.


필자 제시카는 자신의 집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있었던 몬테소리 학교의 고급스러운 외관과 정돈된 실내 환경, 섬세한 교구들, 그리고 그 안에서 교육받고 있던 아이들의 차분한 분위기에 매료되어 딸을 입학시키기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형편에 맞지 않는 비싼 교육비 때문에 이를 포기하고, 대신 아마존에서 짝퉁 몬테소리 교구를 구입하지만 그마저도 어린 아들이 삼킬까 봐 없애고 만다.

가족과 아동 교육에 대해 글을 쓰고 있는 '뉴요커'지 편집자이자 저자이기도 한 필자는 몬테소리 교육의 시작과 교육철학, 발전 과정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20세기 초, 유아 교육이 아동 중심(child-centered)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매우 획기적이었다. 몬테소리와 그녀의 제자들은 이러한 생각을 상식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들은 아동이 체계적이고 자기 주도적(self-directed) 존재이며, 조화로운 환경 안에서는 깊이 집중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탈리아에서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로마 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몬테소리는, 1897년 정신과 병동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중 시에서 운영하는 정신병자 수용소를 방문한다. 아동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몬테소리는 수용소의 아동들 중 많은 수가 장애를 갖고 있으며, 나머지는 영양실조와 방치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1900년, 몬테소리는 로마 최초의 특수교사 양성기관의 공동 원장으로서 2년 동안 교사와 학생들을 지도하여 큰 성과를 이룬다. 이 무렵, 몬테소리는 동료 원장과 사랑에 빠져 비밀리에 아들을 낳고 유모가 양육하도록 한다. 자신의 일을 위해 아들까지 포기한 것은 그녀의 생애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훗날 아들이 틴에이저가 됐을 때 데려왔으며, 그 후 아들은 그녀의 가장 가까운 협력자가 된다.

1907년, 몬테소리는 빈곤층 노동자들이 사는 지역에 Casa dei Bambini(아이들의 학교)를 오픈한다. 학교는 이탈리아에서 유럽으로 그 수를 늘려갔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결핍 상황에도 불구하고, 몬테소리 교육법에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1912년, 몬테소리는 자신의 교육철학을 구체화시킨 첫 번째 책 ⟪몬테소리 교육법(Montessori Method)⟫을 미국에서 출간한다. 그녀의 교실에서는 보상이나 처벌 대신 자생적인 동기와 자기 조절을 목표로 하며, '성적표 철폐 운동'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몇 가지 점에서 그녀의 교육법은 매우 역설적이다: 규칙은 곧 자유이고 자유는 곧 규칙이다; 교사는 주도적이지 않으면서 파워를 갖는다; 아동은 교구를 스스로 다루되 체계적이어야 하며, 교구들은 나무로 만들어져야 한다.




나는 2010년 3월부터 12월까지 10개월 동안 몬테소리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과정을 밟으며, Seton Montessori Institute에서 3-5세 혼합반 교생(student teacher)으로 일했었다.

내가 일했던 몬테소리 학교는 백인들이 주로 사는 부유한 동네에 위치한 학교였고, Lab 스쿨로서 다른 학교들에 선행하는 학습 프로그램을 많이 시도했었다. 따라서 늘 외부 스태프들도 많이 참석하는 세미나나 콘퍼런스가 열리곤 했다. 교사로 일하는 입장에서는 이것이 좋기도 했고 싫기도 했다. 배움의 기회가 많은 대신 주말에도 자주 출근해야 할 만큼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몬테소리 교사가 되기 위한 교육과정은 생각만큼 쉬운 길이 아니었다. 미국에 온 지 몇 년 안 됐던 나는 강의와 세미나에 참여하고 교재를 읽어나가는 데 동료 교육생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다. 3년 안에 강의, 세미나, 실습 시간 등 정해진 과정을 모두 마쳐야 했고, 교육 영역별로 앨범을 만들어 제출해야 하는 과제의 양도 만만치 않았다. 강의와 과제만 해도 벅찬데, 교육생들은 1년에 한 번씩 2박 3일의 수련회에 참여하고 수시로 여러 몬테소리 학교로 견학도 가야 했다. 그리고 모든 교육생들은 교육 과정과 더불어 교생도 병행하기를 권고받았다.





앨범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사진 자료들이 필요했다. 교육이 힘든 만큼 동료애는 끈끈해서 우리는 찍은 사진들을 공유하기도 하고 자료를 챙겨주기도 하며 서로를 격려했다. 몬테소리가 글로벌한 교육 프로그램인 만큼 다양한 문화권, 다양한 백그라운드의 교육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케냐에서 온 친구는 훗날 고향에 돌아가면 몬테소리 유치원을 여는 게 꿈이었고, 프리스쿨부터 초등학교까지 몬테소리 교육을 받은 20대의 젊은 교사 지망생도 있었다. 몇 번의 세미나만 남겨 놓고 모든 교육과정이 끝나자, 우리는 각자의 몬테소리 유치원으로 자리를 배정받아 교생 생활을 시작했다.   

아이들이 각각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나는, 집안일을 챙기고 때마침 한국에서 방문한 부모님과 시부모님을 모시며 교육을 받고 과제를 제출하고 유치원에 출근했다.

전공을 살리고 싶어 선택한 일이었지만, 얼마 못 가 나는 주소를 잘못 찾아왔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몬테소리 교육이 놓치고 있는 것들 2 / Jessica Winter의 저널을 읽고에서 계속됩니다.

https://brunch.co.kr/@annalee1340/30


⟨마리아 몬테소리의 잘못된 교육; 그녀의 교육법은 대중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특권이 되었다. (The Miseducation of Maria Montessori; Her method was meant for the public. Then it became a privilege.) - By Jessica Winter, 2022. 3. 3, The New Yorker⟩

https://www.newyorker.com/books/under-review/the-miseducation-of-maria-montessori?utm_source=onsite-share&utm_medium=email&utm_campaign=onsite-share&utm_brand=the-new-yo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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