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않을 편지
어젯밤 꿈을 꾸었다.
어둑한 집 안에 네가 있었다. 나는 너를 데리고 나오고 싶었다.
그런데 거기 너를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있는 듯 없는 듯 그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너를 보고 있었다.
잘 지내니?
오랜만에 네게 말을 걸으려니 어색하다.
잘 모르겠다, 지금의 너에 대한 내 감정을.
왜 너하고 한 번쯤 이야기해 보지 않았을까, 우리에 대해서. 전과 다른 느낌이 들었다면 한 번쯤은 물어볼 수 있었을 텐데...
그저 지나가는 삶의 굴곡 정도로 생각했다. 아니, 그보다는 내 느낌을 부정하고 싶었는지도 몰라.
옛날부터 갖고 있던 우리에 대한 생각, '다 변해도 우린 안 변해'를 버릴 수 없어서 현실을 똑바로 보기 싫었을 거야.
고집을 부리면 늘 뭔가를 얻는 줄 알았어.
잃을 수도 있다는 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어쩌면 너도 세월 속에서 우리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흐르는 시간만큼이나 서로에게 참 무심했던 것 같다.
네가 힘들 때 가까이 있어주지 못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너를 지지했다.
네가 힘들어할 때 난 네 입장만 생각했어. 너의 고통만 헤아렸어. 다른 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너한텐 어떤 얘기도 다 할 수 있었어. 자존심 상하고 창피했던 일, 누구한테도 말해본 적 없던 일들...
그러면 넌 그걸 다 들어주고 끄덕여 주고 기도해 주었지.
친구에 대한 영화나 책을 보면 늘 너를 떠올렸어.
우리는 베프라고, 영혼의 쌍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의 대화가 지극히 피상적인 것들로 채워지기 시작했지.
넌 예전보다 멀리 있었다.
각자의 삶에서 생겨난 의견 차이 정도는 함께 뛰어넘을 수 있다고 믿었다. 우리가 인생을 같이 알아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미안해. 그동안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너를 봐서. 그래서 너의 다른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좀 더 빨리 알아차렸더라면 너를 편하게 해 줄 수 있었을 텐데...
우리 우정을 혼자서 묻어버린 친구야.
그 어두운 방에 불도 안 켜고 있으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친구야.
무너진 마음을 안고만 있을 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래서 쓸쓸한가 보다.
네가 한 선택이 진정한 치유의 길에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시간이 걸려도 좋아.
너무 늦지만 마.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