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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May 21. 2022

시연과 민수

마지막 이야기

지난 이야기: 시연과 민수, 첫 번째 이야기

https://brunch.co.kr/@annalee1340/39


지난 이야기: 시연과 민수, 두 번째 이야기

https://brunch.co.kr/@annalee1340/40


민수와 시연이 다시 만난 건 시연의 결혼식 날 신부 대기실에서였다.

어머니와 함께 신부 대기실에 들어선 민수는 평상시의 차분한 모습과는 어딘가 달랐다.

상기된 얼굴에 달뜬 목소리로 "축하해" 하며 시연의 손을 잡는 민수 손의 열기가 시연이 끼고 있던 장갑을 뚫고 들어올 듯했다.


시연이 결혼과 함께 잠시 쉬었던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 준비하던 무렵, 민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회사 일로 일본에 나가게 되었는데 떠나기 전에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것이었다.

시연은 결혼식에 와 준 민수가 고마워 밥이라도 살까 했었는데 마침 잘 됐다고 생각했다.

전골 하나를 시켜 놓고 둘은 오랜만에 마주 앉았다.

결혼 생활은 어떠냐 회사 생활은 어떠냐 둘은 서로 안부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일본 가면 이제 정말 얼굴 보기 힘들겠네." 시연이 말했다.

"같이 가자."

시연은 잘 못 들었나 싶어 민수를 바라보았다. 민수는 시연과 눈을 맞추지 않고 애꿎은 전골 건더기만 수저로 휘휘 젓고 있었다.

지금 뭐라 그랬냐고 입술 밖으로 빠져나오려는 말을 시연은 꾹 눌렀다.


그리고 몇 해 후, 민수의 가족들도 일본으로 갔고 거기서 민수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시연은 엄마한테서 전해 들었다.

봄이 오고 노란 개나리가 피기 시작하면 시연은 민수가 생각나곤 했다.

개 짖는 소리에 놀라 엉덩방아를 찧던 자신을 민수가 일으켜 유치원까지 무사히 데려다주었던 날도 골목 안 얕은 담장 너머로 개나리가 활짝 피어 있었다. 시연은 옛날 그 골목길이 눈에 선했다.


누군가 첫사랑 이야기를 하면 시연은 어김없이 민수를 떠올린다.

서로의 감정에 더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시연은 생각한다. 감정도 마냥 고여 있기만 하는 게 아니라 세월과 함께 흘러가기도 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면 어땠을까.

시연과 민수의 젊음이 그들의 감정마저 덮어버릴 만큼 진했는지 모른다.

어쩌면 민수도 시연처럼 유치원 때와 어른이 돼서 다시 만났을 때 사이 어디쯤에서 머뭇거렸을지 모른다.

"같이 가자"는 말은 민수의 시연을 향한 마지막 용기였을까.

어쩌면 시연의 마음속에 울린 시연 자신의 목소리였을지도 모른다.


시연의 마음속에는 '말방구' 민수가, 첫사랑 민수가 아직도 살고 있다.

사랑과 함께 남은 마음속 어린아이는 꼭 다 자라지 않아도 되나 보다.

문득 시연의 눈에 둘이 손을 꼭 붙잡고 걸어가는 아이 둘이 들어온다. 시연은 종알종알 이야기가 궁금해 두 꼬마의 뒤를 따라가 본다.

살랑 바람결에 어디선가 날아온 조그만 꽃잎 하나가 여자 아이의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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