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야기
지난 이야기: 시연과 민수, 첫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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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1학년 축제 때 갑자기 민수한테서 연락이 왔다.
민수의 대학을 졸업한 유명 통기타 가수가 자신의 학교에서 콘서트를 하는데 오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뜻밖의 연락에 시연은 몹시 반가웠다.
둘은 시연의 학교 앞에서 만나 점심을 먹으며 한참 수다를 떨었다. 중간의 어색했던 시절은 사라져 없어진 것 같았다.
민수의 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콘서트는 꽉 찬 좌석만큼이나 감동을 주는 노래들로 풍성했다.
아까부터 시연은 정장을 반듯하게 차려입은 민수의 앞머리 사이로 반짝이는 땀방울들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하늘하늘한 반 팔 블라우스 차림의 시연과는 달리 민수는 혼자 겨울을 맞은 듯한 옷차림을 하고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좀 쌀쌀한데 네 웃옷 좀 벗어줘 봐" 시연이 말하자, 민수는 기다렸다는 듯 얼른 양복 윗저고리를 벗어 시연의 어깨에 둘러주었다.
그리고 둘은 콘서트가 끝나고 관객들이 다 빠져나간 후로도 오랫동안 거기 앉아 있었다.
무슨 이야기에 그렇게 열중해 있었는지 시연은 어느새 민수의 팔이 자신이 두르고 있는 민수의 웃옷 위에 살포시 얹혀 있는 것도 몰랐다.
2학년이 되고 얼마 안 있어, 엄마가 시연에게 민수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 민수가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다시 입시를 치러 시연과 같은 학교에 입학했다는 것이다.
"민수 엄마 말로는 민수가 너랑 같은 학교에 다니고 싶어서 그랬다던데, 요즘 서로 연락 안 하니?"
시연은 '뭐래?' 하는 뚱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콘서트 날 이후 1년 가까이 전화 한 번 안 한 민수가 왜 자기랑 같은 학교에 다니고 싶어 그 지긋지긋한 시험을 또 봤다는 건지 시연은 이해가 안 갔다.
엄마들의 못 말리는 수다가 빚어낸 오버스러움일 거라고 생각하자 시연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유치원 이후 처음으로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됐다며, 둘은 축하의 저녁과 함께 술도 몇 잔 나누었다.
그리고 며칠 후 시연은 민수가 시연과 사귀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엄마에게서 전해 들었다.
시연은 "사귀긴 뭘 사귀어, 지랑 나랑 몇 년 친군데. 걔 바보 아냐?" 하고 쏘아붙였다.
엄마를 향해 이런 말을 하게 만든 민수가 못나게 느껴지기도 했다.
민수의 사귀자는 의미가 뭔지 시연은 모르지 않았다. 어쩌면 시연은 언젠가부터 눈치채기 시작한 민수의 마음을 피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연도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알 수 없어 답답했다.
유치원 때의 의젓하고 착하던 민수, 시연이 좋아하던 민수는 지금도 그대로지만, 시연의 마음속 민수는 마치 유치원 때 민수와 지금의 민수로 분리돼 있는 것 같았다. 유치원 때 느꼈던 첫사랑의 감정은 지금도 로맨틱한데, 민수와 연인 사이가 되는 상상은 왠지 오글거렸다.
그렇게 어정쩡하게 시간이 흘러갔다.
3학년이 되면서, 캠퍼스에서 민수가 여자 친구와 있는 모습이 시연의 눈에 띄기 시작했다. 시연뿐 아니라 캠퍼스 안의 누구라도 알 정도로 민수와 여자 친구는 늘 붙어 다녔다. 둘은 옷까지 커플 룩으로 입고 다녀 멀리서도 알아볼 정도였다.
그런데 그들은 시연과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도서관이나 학생 식당에서 한두 번 정도는 마주칠 법도 한데, 이상하게 만나 지지 않았다.
시연은 여자 친구와 함께 있는 민수와 마주치면 어떻게 인사할까 미리 생각까지 해 두었지만, 그런 일은 시연이 졸업할 때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시연과 민수, 마지막 이야기'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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