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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Jul 06. 2024

반반의 나

<낮과 밤이 다른 그녀>에 대하여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발견한 TV 시리즈 <낮과 밤이 다른 그녀>. 주말 내내 홀린 듯 그간의 에피소드를 몰아보았다.

다 보고 리뷰를 쓰자니 할 말이 너무 많이 쌓일 것 같아, 에피소드 여섯 개만 본 채로 이 글을 시작하게 됐다.

요즘 드라마의 트렌드는 장르의 혼합인 것 같다. 이 드라마 또한 판타지, 스릴러, 멜로가 한 배를 탔다. 작가와 감독이 운전을 잘해나가길 바라며 나도 목적지까지 동행하려 한다.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는 데 오래 걸릴 뿐 아니라 한동안 피폐한 몰골로 지내야 하므로, 나는 여간해선 드라마를 시작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덥석 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이유는 한 주에 두 에피소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몰아보는 벅참은 없어도 기다리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았다.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좋아하는 이정은 배우가 나오기 때문이다.


연극을 하던 시절에 너무 가난해서 돈도 많이 꿔봤고, 한때 연기 울렁증으로도 고생했다는 이정은 배우. 그녀가 주는 수수하고 친근한 느낌이 좋다.

그녀의 수많은 배역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건 그 유명한 <기생충>의 문광도 아니고 <우리들의 블루스>의 은희도 아닌, <미스터 션샤인>의 함안댁이다. 그중에서도 애기씨의 단식투쟁을 보다 못해 쪽마루 위에 벌렁 누워 아이처럼 발을 구르며 고래고래 울던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서울 출신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경상도면 경상도 전라도면 전라도 심지어 제주도까지 사투리 연기에 능하다. 그녀는 마치 옷을 갈아입듯 연기한다. 입는 옷마다 그녀만을 위한 맞춤이 되듯 그렇게 배역을 소화한다. 연기라는 걸 알면서도 빠져들게 만든다. 그래서 그녀는 나에게 무작정 호감형이다.


주인공 미진은 길고양이 한 마리를 만난 날부터 낮에는 50대, 밤에는 20대로 살아가게 된다. 그녀를 둘러싼 불가사의한 사건들과 가족 이야기, 사랑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다.

미진이 친구에게 "이번만큼은 꼭 보고 싶다, 내가 최선을 다하면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라고 말할 때 하마터면 '미투' 할 뻔했다. ‘최선을 다한다’는 말에 언젠가부터 부정적인 의미가 담기기 시작했지만, 나는 이 말이 좋다. 비록 최선을 다할 수 없더라도 그래서 결과적으로 빈 말이 될 수밖에 없더라도, 온 힘을 다해보려는 그 마음이 아름다워서다.

20대의 젊음을 바쳐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일할 기회를 얻지 못했던 미진이 50대의 모습으로 취업에 성공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짠했다. 미진과 같은 나이인 96년생들이 이 드라마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지 알 수 없지만, 나이 든 아줌마인 나는 20대와 50대의 간극이 어쩐지 예전처럼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이를 떠나 우리 모두 쉽지 않은 인생이구나 생각했다.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20대에게도 50대에게도 용기를 주는 드라마다. 미진이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패만 하던 20대로 돌아간다 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나도 낮이나 밤 어느 한쪽을 다시 20대로 살게 된다면 어떨까...


그냥, 나는 지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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