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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May 04. 2022

브런치와 비행기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달리다 보면 - 요란한 엔진 소리와 요동 때문에 날고 있기보다 달리고 있는 것 같다 - 평상시와 참 다른 느낌이 든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모든 게 미니어처처럼 작지만 땅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넓다.

눈 덮인 높은 산도, 구름도 다 내 발아래 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뻗은 길이 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사막의 끝이 보이기도 한다.

길 위에 서 있을 땐 어디로 가야 할지, 가다 보면 어떻게 될지 막막하지만, 높이 올라가 내려다보면 답은 너무 쉽게 나온다.

갑자기 모든 게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왜 이렇게 아등바등 살지? 왜 이렇게 속이 좁지? 왜 이렇게 오래 매달려 속을 태우지?

그러면서 마음이 세상만큼이나 넓어진다. 땅에 내려가면 이 기분을 잊지 말고 스트레스받으며 살지 말자고, 더 너그러워지자고 굳게 다짐한다. 이런 훌륭한 깨우침을 얻다니 스스로 대견해서 막 눈물이 날 것만 같다.

그리고 비행기에서 내리기도 전에 그 전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비행기가 착륙하고 나면 숙소에 도착해서 뭘 먼저 할까 마음은 조급해지고, 그 순간 내 앞으로 끼어드는 사람에게 눈을 흘기고 있다.

땅에 발을 딛음과 동시에 시야는 또 좁아지고 만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시작으로 브런치에 글을 쓴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한 편 한 편 글을 쓸 때마다 마음이 자꾸 말랑말랑 해지는 것 같다. 치료나 회복 같은 목적을 가지고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아니다.

그냥 나 자신과 만나보고 싶었다. 다 자라지 못한 내면 아이와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그러다 보면 때로는 힘들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내게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 글을 쓰면서 조금씩 부드러워지는 걸 느낀다. 그들에 대한 이해와 안쓰러움이 생겨난다. 이건 전혀 내가 예상했던 일이 아니다.

이러다 마음속의 아이가 너무 빨리 자라 할 이야기가 없어지면 어떡하나 한편으론 걱정이다. 그러면 그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걱정 마, 무엇으로 어떻게 살든 살아있는 한 이야기는 끝나지 않아."


브런치에 글을 쓰는 건 비행기를 타고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과 같다.

글을 쓰면 삶과 나 사이에 거리가 생기고, 넓고 멀리 보면 커다랗던 마음속의 맺힘이 작게 느껴진다.

비행기가 요동칠 때처럼 지금의 나와 옛날의 나 사이에 가끔 저항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소란은 평화를 이기지 못한다,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하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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