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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Apr 17. 2022

나의 글쓰기

오늘 아이들한테서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았다.

말린 야생화 한 묶음이 짧은 편지, 작은 화병과 함께 예쁜 상자에 들어 있었다.

브런치 작가가 된 지 3주가 되었다. 기쁨을 은밀하게 간직하고 싶어서, 그리고 좀 쑥스럽기도 해서 아이들한테 알리지 않다가 며칠 전 안부와 섞어 말했었다.


2020년 3월 팬데믹으로 도시가 락 다운되고 휴교령이 내리자, 내가 일하던 데이케어 센터도 잠시 문을 닫게 되었다. 그리고 7월 초 센터는 다시 문을 열었지만, 나는 복귀하지 않았다.

같이 일하던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그리워 누구보다 재오픈을 기다렸지만, 가족들은 내가 일에 복귀하는 것을 반대했다. 팬데믹 이전부터 센터 아이들과 감기를 주거니 받거니 서로 나누며 늘 달고 살던 나를 생각하면, 아이들과 남편으로선 도저히 안심이 안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나도 잠시 쉬는 동안 몸이 많이 안 좋아진 걸 느끼고 있었다. 일할 때는 긴장해서 잘 모르던 증상들이 집콕하면서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일을 그만두고 한동안은 이사와 새로운 생활에의 적응, 건강검진 등으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새 거주지와 달라진 생활 패턴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자, 센터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아이들은 잠깐 동안에 쑥쑥 자라는데 얼마나 많이 컸을까, 다들 건강할까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이 났다. 센터에 다시 나가는 꿈을 꿀 정도였다.

그런 나를 보면서, 큰 딸이 내게 글을 써보라고 권했다.


사실, 내가 작가의 꿈을 키운 건 어릴 때부터였다. 학교 다닐 때 글짓기 대회에서 상도 여러 번 탔었다. 그런데 그동안 몇 번이나 글을 써보려고 했지만, 웬일인지 나는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단지 게을러서만은 아니었다. 내 안의 이야기들이 마치 출구가 막혀 나오지 못하고 고여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꺼내놓기도 전에 그 이야기들이 다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 특별할 것도, 내놓고 보여줄 것도 없는 이야기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수많은 뛰어난 글들에 비하면 내 글은 말도 안 되게 우스운 글이 될 거라는 생각에 창피했다.

글을 써보지도 못한 채, 나는 이렇게 혼자 위축되어 쭈굴쭈굴해져 갔다.


글쓰기 기법이 부족해서인가 싶어 강의나 수업도 들었다. 과제를 제출하기 위해 짜내듯 쓴 글 말고는 정말 내 글을 쓸 수가 없었다. 한 줄 쓰고 지우기를 수십 번, 겨우 두 줄을 쓰고 나면 앞의 한 줄을 지우고 다시 써야 했다. 일기를 써 보기도 했지만 얼마 못 가 한 장씩 두 장씩 뜯어냈고, 급기야 통째로 휴지통으로 들어가기 일쑤였다.

아무 기록도 아무 할 이야기도 내겐 남지 않게 되고 말았다. 말이 너무 하고 싶은데 말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나는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다.


글을 써보라는 딸의 이야기는 반가우면서 한편으로 나를 심란하게 만들었다. 글을 쓸 수 없어서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답답했다.

일을 그만두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오롯이 혼자서 시간을 보낼 기회도 늘었다. 간단한  운동을 하거나 관심 있는 동영상들을 챙겨 보기도 하고, 무엇보다 책을 많이 읽으려 노력했다. 집중력이 딸리는 편이라 책 한 권을 읽으려면 오래 걸려서 일할 때는 미뤄 놨었는데, 시간이 많으니 책 읽기에 좋았다.


그러면서 나를 만났다. 가슴속 깊이깊이 숨어있던 나, 거기 있는지도 몰랐던 어릴 때의 나, 친구가 필요한 나를 만났다.

내가 나를 많이 미워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를 나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글을 쓸 수 없었던 것이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을 벌 주기 위해서 스스로 마음의 문을 걸어 잠겄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커다란 계기는 없었다. 언제부턴가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지면서, 나 자신을 그렇게 내버려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가느다란 한 줄기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닫아걸어버린 문 대신 어딘가에 창문이 있었던 걸까. 아무리 절망해도 다시 일어날 힘이 신기하게도 어릴 때부터 내 안에 늘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이 없어서 몇 번을 망설이다가,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하고 며칠 후 반가운 이메일을 받았다.

부족한 나의 글이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게 나는 여전히 두렵고 부끄럽다. 그런데 이제 그 두려움보다 쓰는 즐거움이 조금씩 앞서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나는 나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내 안의 어린 Anna가 행복해하고 있다. 머지않아 어른이 될 거라고 즐거워하고 있다.


아이들이 보내준 브런치 작가 축하 선물을 풀어보면서 피식 혼자 웃음이 났다. 생화가 아닌 말린 꽃을 보낸 건 식물 키우기에 소질이 없는 엄마를 위한 아이들의 배려인가 싶어서였다. 고맙다고 말하는 내게,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은 "엄마, 그거 물 안 줘도 돼"를 몇 번이나 강조한다. 내가 아무리 심한 화초 문외한이라고 해도 말린 꽃에 물 줄 정도는 아닌데 말이다.

"엄마, 그 꽃은 말린 거라 영원 하대. 우리도 엄마 영원히 사랑해" 덧붙이는 아이들의 말에 가슴이 찡했다. 말을 끝까지 다 들어볼 걸... 말린 꽃을 보낸 진짜 이유는 나중에 덧붙인 말이었을 거라고 내 맘대로 결론을 내려본다. 


이렇게 나는 브런치가 내려준 고마운 동아줄을 잡고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다.

며칠 전 읽은 책의 한 구절이 머릿속을 맴돈다.

"작가님과 작가님의 글은 얼마나 닮았나요?"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나와 많이 닮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내가 쓰는 글은 내가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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