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사람들

고향을 여행하다 4

by Anna Lee

이번 여행에서 만난, 잊히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 한 사람은 남대문 시장에서 도매점을 운영하는 사장님이다. 지나다 우연히 가게에 찾아들었던 나는 그곳에서 마침 꼭 필요한 물건 하나를 발견했다.

그런데 사장님은 반갑게 손님을 맞아주기는커녕 시종일관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값을 좀 깎아볼 요량으로 말을 걸어도 사장님은 전화기를 붙든 채로 내게 "안 돼요"만 연발했다. 전화기엔 별로 말하지 않고 내 말엔 꼬박꼬박 대꾸하는 걸로 보아, 손님 대하기가 쑥스러워 그냥 통화하는 척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전화기를 든 채 손님을 상대하는 모습은 자칫 성의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묘하게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사장님은 여전히 전화기를 붙든 채 한동안 안 된다고만 하더니 결국 "아, 몰라요, 몰라. 그럼 그렇게 가져가요" 했다. 내가 헤헤 웃으며 "감사해요, 또 올게요" 했더니, 사장님은 쿨하게 "또 오지 마요" 하면서 거스름돈을 건넸다.

그리고 며칠 후, 정말 그 가게에 또 갈 일이 생기고 말았다. 내가 가게에 들어서자 사장님, 단박에 나를 알아보고는 "아, 왜 또 왔어요?" 하는데, 얼굴은 웃고 있다. 물건을 고르고 나서 깎아달랬더니 또 안 된다는 사장님.

그러나 손님 이기는 장사는 없다고 했던가. "알았어요, 알았어. 그거만 내고 빨리 가요" 말은 쌀쌀맞은 척하면서 입은 슬쩍 웃는 사장님. 나, "또 올게요", 사장님, "아, 또 오지 마요."

다음에 서울 가면 아무래도 그 가게에 또 가게 될 것 같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말을 뛰어넘어 상대방의 마음은 다 느껴진다는 걸, 사장님을 통해 알았다.

다음은 내가 머물던 동네의 신발가게 사장님. 매일 지나치던 버스정류장 바로 앞에 있던 신발가게였다.

하루는 가게 앞에 진열된 신발들이 너무 예뻐서 구경이나 할까 기웃거리고 있는데, 사장님이 얼굴에 미소를 띠며 반겨주셨다. 그런데, 한참을 이것저것 신어보아도 마음에 드는 신발은 내 발에 맞지 않고 내 발에 맞는 신발은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귀찮아하지 않고 각 신발의 장점을 콕 집어 설명해 주는 사장님은 자신이 파는 신발에 진심이었다. 가게 앞에 '점포정리 세일'이라 붙어있던데, 이 분은 신발 말고 다른 걸 팔게 되더라도 마음을 다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신발 한 켤레를 사기로 하고는 사장님이 봉투를 가져오는 동안 다른 신발 하나를 더 신어보았다. "요것도 예쁜데" 나는 마치 엄마 따라 시장에 나온 아이처럼, 알록달록 꽃신들에 정신이 팔린 소녀처럼 들떴다. 사장님은 봉투를 들고 나오다가 그런 나를 보더니 "만 원만 더 주고 그것도 가져가요" 했다. 나는 신발 두 켤레를 사들고 날아갈 것 같은 기분으로 가게를 나섰다.

그 가게에서 산 신발 두 켤레를 나는 여행짐 속에 고이 챙겨 와 잘 신고 다닌다. 이렇게 먼 곳에서 신고 다닐 줄 사장님은 몰랐겠지. 다음에 서울 가면 가게에 다시 들러보고 싶다. 왠지 사장님은 그때도 그 자리에서 신발을 팔고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내가 미국으로 오기 전 살던 동네의 세탁소 사장님이다. 아직도 같은 자리에서 거의 쉬는 날 없이 일하고 계신다.

새로 산 남편의 바지가 너무 길어서 바짓단을 줄이려고 세탁소에 갔다. 오래전에 떠나온 나를 사장님이 알아볼 리 없었지만, 그래도 반갑게 인사를 드리고 바짓단을 줄여달라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사장님, 대뜸 "죽여요, 살려요?" 하신다. "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내게 사장님은 씩 웃으며 "그니까, 단을 안으로 감아서 넣어드릴까요 아니면 아예 잘라버릴까요? 이쪽 업계에선 다 이걸로 통하는데, 죽일까 살릴까" 이러시는 거다. "아, 그럼 죽여주세요" 나는 로마시대 황제라도 된 듯 엄지손가락만 펼친 주먹을 아래쪽으로 휙 돌리며 말했다. 그러고는 사장님이랑 한참을 같이 웃었다.

몇 주가 지난 뒤 다른 바지를 갖고 다시 들른 세탁소. 사장님은 또 물으신다. "죽여요, 살려요?" 나는 이번엔 더 과감하게 목을 쓱 베는 시늉을 하며 "죽여주세요. 깔끔하게!" 이랬다. 그러고는 사장님이랑 또 한참을 같이 웃었다.

두 번 다 저렴한 가격에 바짓단이 예쁘게 수선된 건 물론이다. 살다가 답답한 일이 생기면 사장님의 통쾌한 유머를 떠올려봐야겠다.

집으로 돌아오고 한참이 지났는데도 이 분들이 가끔 생각나는 건 왜일까. 그들에게서 나는 고향의 냄새를 맡았는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밥을 먹었던 날도 잊히지 않는다.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 탄성, 웃음소리가 들꽃처럼 꽉 차던 식당 홀, 갖가지 나물과 생선구이, 청국장, 불고기, 솥밥으로 차려진 밥상, 그 다채로운 온기가 그립다.

보고 싶던 친구들을 만나니 꿈을 이룬 기분이었다. 너무 행복해서 비현실적인 날이었다.

내가 나눠준 작은 선물들을 들고 가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며, 문득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란 말이 떠올랐다. 뜻하지 않던 선물을 받는 것처럼, 이제는 슬픔보다 기쁨을 더 많이 나눠 갖는 사이가 되면 좋겠다. 세월이 흘러도 모두들 그 자리 그대로이면 좋겠다.

세상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고 여러 갈래로 흐른다. 삶에 괴로움이나 슬픔만 있는 게 아니라 행복감도 기쁨도 있는 게 그 이유겠지. 꼭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서로 공감대가 적어도,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다면 그걸로 된 게 아닐까. 소중한 건, 그리고 기억 속에 남는 건 결국 함께 보내는 시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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