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나란히 출장을 떠난 아이들을 대신해 그들이 키우고 있는 고양이 두 마리를 보살피며 지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이들 집으로 가서 고양이들의 끼니를 챙겨주고 고양이들이 사용하는 화장실도 청소해 주고는 함께 시간을 보내다 저녁 어스름이 내릴 무렵 퇴근을 했다. 닷새를 그렇게 지내고 나니, 폭염주의보가 내릴 정도로 무더운 날씨에 아무도 없는 밤 시간을 고양이들끼리 어떻게 보낼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집에 오려고 신발을 신으면 마치 가지 말라는 듯 문간에 나와 나를 빤히 바라보던 고양이들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생각다 못해 엿새째부터는 아예 가방을 꾸려 남편과 함께 아이들 집으로 옮겨갔다. 그렇게 이레 동안의 고양이들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고양이 집사로 꼬박 열 두 날을 살게 되었던 것이다.
마리와 노리, 한 살 난 이 고양이들은 길고양이 새끼로 각각 구조되어 임시보호자와 지내다가 작년 연말에 우리 아이들에게로 왔다. 마리는 신중하고 의심이 많으며 독립심이 강한 반면, 노리는 호기심과 애교가 많고 자는 것보다 노는 게 더 좋은 고양이다. 성격이 이렇게 딴판인 둘인데도 찰떡같은 사이인 게 얼마나 고맙고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몇 번 본 적이 있는데도 고양이들은 여전히 낯을 가리고 나와 남편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우리를 자신들의 영역에 허락 없이 들어온 침입자 취급이다. 밥이나 간식 줄 때를 빼고는 아는 척도 안 하더니, 등 뒤에서 따가운 시선을 느끼고 돌아보면 어느새 살그머니 다가와 매와 같은 눈으로 나를 감시하는 것이다. 우리가 내는 소리들에 예민하게 굴기도 하고, 우리가 지나간 자리는 어디나 냄새를 맡아보고 확인했다. 항상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절대 곁을 주지 않는 그들을 만져보거나 서로 교감을 나누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러니 그들이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알려면 나도 그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네 뒤에 나 있다, 고양이와 나는 서로를 매우 주의 깊게 관찰하며 밀당을 하고 있었다.
고양이들이 놀랄까 봐, 그러면 더 날 멀리할까 봐 조심조심 움직이고 사뿐사뿐 걸어 다녔다. 문득, 고양이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애쓰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나 왜 이러지? 어이가 없어졌다. 그저 꼬박꼬박 먹을 것 챙겨주고 화장실 청소나 해주면 되겠지, 하던 내가 어떻게든 그들의 마음을 얻고 싶어 지다니 내 마음을 나도 알 수가 없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게 대체 얼마만일까, 무척 낯설었다. 고양이들은 마음 내키는 대로 살고 있는데, 나는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전전긍긍했다.
날씨가 무더운 만큼, 고양이들의 위생에 더 신경을 썼다. 밥그릇도 깨끗이 닦고 화장실도 자주 치워주었다. 낯선 사람이 자신의 밥그릇과 화장실을 만지는 게 이상했는지 의심의 눈빛을 보내던 고양이들도 깨끗한 화장실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낚시 놀이도 열심히 해주었다. 노리는 재빠른 움직임에, 마리는 은근한 움직임에 잘 반응하는 편이다. 빠르고 느리고 낮고 높은 동작들을 리드미컬하게 섞어 가며, 나의 낚싯대는 쥐가 되기도 하고 벌레가 되기도 하고 새가 되기도 했다. 고양이들의 동그란 눈, 씰룩거리는 엉덩이, 그들이 부르는 사냥노래(chattering)에 빠져드는 순간이었다.
고양이들은 차츰 거리를 좁혀오기 시작했다. 침대에 누워 책을 보고 있으면 갑자기 노리의 까만 머리가 침대 밑에서 쑥 올라오기도 하고, 화장실 가는 나를 졸졸 쫓아오는가 하면, 혼자 있기를 좋아하던 마리도 슬그머니 내 주위를 맴돌곤 했다. 그러다 처음으로 고양이들과 밤 시간을 함께 보내던 날, 자려고 누운 나의 옆구리와 다리 사이를 노리와 마리가 차지하고 잠들어버렸다. 그토록 곁을 안 주던 그들이 내 몸에 자신들의 몸을 꼭 붙이고 자다니,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고양이들이 깰까 봐 그대로 얼어붙은 나는 콩콩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겨우 눈을 붙였다.
신기한 건 마리였다. 시도 때도 없이 다가와 놀자고 청하는 노리와 달리, 낮 시간 대부분 혼자 창 밖을 보거나 잠을 자는 마리는 아침이면 내 가슴 위로 올라와 골골송을 부르며 꾹꾹이를 하고, 내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쿵 부딪치며 친하게 굴었다. 그럴 때면 표현력 부족한 자신의 마음을 알아달라는 듯 다정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다 낮 시간이 되면 다시 도도한 마리로 돌아가서는 불러도 아는 척도 안 한다. 자신의 영역에 머물며 거리를 유지하다가 기회가 오면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로 돌아가는 마리, 신비로운 매력의 소유자다.
노리는 내 무릎 위에 올라와 내가 만져주면 골골송을 부르다 잠들곤 했다. 내게 온전히 기댄 작고 부드러운 몸의 감촉에 지금까지와는 결이 다른 행복감을 느꼈는데,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기도 했다. 오래전 이별한 반려견 테리를 안았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이렇게 이런 식으로, 나는 테리를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 사이에서 내 별명은 가필드(Garfield, 미국의 만화가 짐 데이비스가 1978년 제작한 만화의 주인공 고양이)였다. 늘 잠이 부족해 눈을 반쯤 뜨고 다녀서였는지, 아니면 나의 어떤 면이 고양이를 연상시켰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알게 된 고양이와 나의 닮은 점은 혼자 있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즐기지만, 때로 그들과 떨어져 혼자만의 시간을 갖지 못하면 불안해지는 것 말이다.
아이들이 돌아와 고양이들과의 동거가 끝난 지금, 나는 가끔 다리 근처에서 노리의 체온이 느껴지는 듯해 내려다보게 되고, 아침에 눈을 뜨면 마리가 옆에 와있을 것 같아 괜히 침대를 더듬어보게 된다. 행복한 꿈을 꾸다 깬 것처럼 아쉬워 어쩔 줄 모르게 된다. 고양이의 마음을 얻고 싶던 내 마음이 생각나 빙그레 웃으며 하루를 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