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같은 사랑이 올 때 1

by Anna Lee

일 년은 고민한 것 같다. 아니, 뉴욕에 오면서부터였을까. 아니, 사실은 얼마동안 고민한 건지 잘 모르겠다.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날을 고민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아이들 집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보게 된 보호소 강아지들의 사진이 자꾸 떠올랐다.

지난 연말 고양이 두 마리를 입양한 아이들은 틈만 나면 내게 강아지나 고양이를 입양하라고 권했다. 그때마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슬쩍 다른 이야기로 옮겨가곤 했다. 아이들이 키우는 고양이의 대리집사 노릇을 한 적은 있지만 그것과 한 생명을 끝까지 책임지는 것과는 천양지차일 것이었다. 아이 둘을 키워 독립시키고 가뿐해지던 시기, 이제부터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기로 마음먹으니 다시 누군가를 보살피고 싶은 마음도 흩어졌다.

그런데 자꾸만 사진 속 강아지들이 떠올랐다. 생각과 마음이 따로였던 걸까.

"그 앱(App) 이름이 뭐지? 그때 같이 봤던, 잃어버린 동물들 찾아주거나 유기견 입양 돕는 플랫폼 말이야" 아이들에게 묻자 내 마음을 간파한 아이들은 곧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스마일'이란 이름표를 달고 활짝 웃고 있는 듯한 하얀 강아지였다. 유독 아이들 눈에 들어와 프로필을 읽어보니 한국에서 구조된 강아지라는 것이다. 첫눈에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도 왠지 끌린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느낌만으로 덥석 강아지를 데려올 수는 없는 일이다. 한없이 망설이기만 하는 내게 아이들은 그만 주저하라고, 엄마는 준비가 되었다고 했다. 밤새 뜨겁게 고민하고 나서 다음 날 아침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될 것 같다고 말하는 내게 아이들은 말했다. "늦었어. 우리가 이미 입양신청 했거든."

그래도 입양을 추진하는 단체에서 우리를 적임자로 허락해야 하는 절차가 남았으니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강아지를 좋아하지만 보호자가 되기는 두려웠던 나는 기대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한편으론 안 된다고 하면 어쩌지 걱정도 됐다. 내 마음을 나도 알 수가 없었다.


스마일이 있던 충청남도의 한 보호소는 강아지들의 사망률이 매우 높은 곳이다. 보호소 봉사자가 임시보호를 하던 스마일은 8월에 다시 서울의 임보자에게 보내졌다고 한다. 스마일은 세 마리 형제들과 함께 구조된 8개월 추정 수컷 강아지다.

스마일의 해외입양을 맡은 동물구조 단체에서는 우리 집 안팎의 사진을 보내줄 수 있겠냐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강아지가 살게 될 환경이 어떤지 알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곧, 구조단체 직원인 미니와의 온라인 인터뷰 일정이 잡혔다.

대도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우리의 환경이 강아지를 잘 키우기에 적합할까, 어쩌면 다른 사람이 스마일을 원할지도 몰라, 대체 강아지를 데려오고 싶은 건지 아닌 건지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나는 밤마다 스마일의 사진을 들여다보다 잠이 들었다.


인터뷰를 마친 날로부터 꼭 일주일이 되는 날 한국에서 슈가(스마일의 새 이름)가 오게 되었다. 생각보다 빠른 진행에 놀란 남편과 나는 부랴부랴 강아지 목줄, 리쉬, 하네스, 사료 등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미니, 보호소 봉사자, 임보자, 우리 가족 모두는 단톡방을 열고 슈가의 사진과 동영상을 비롯한 여러 정보를 공유했다.

슈가가 처음 구조될 때의 동영상을 나는 보고 또 보았다. 형제들보다 작은 몸집의 소심해 보이는 강아지, 좁고 지저분한 철장 안에 엎드려 있던 슈가의 모습이 이후 임보자와 함께 지낸 행복한 사진들 위로 자꾸만 떠올랐다. 슈가는 다른 강아지들과는 잘 지냈지만 사람들은 무서워한다고 했다. 구조 당시 피부병이 있어 한동안 치료를 받았다고도 했다. 어디서 어떻게 보호소로 왔는지 모르는 슈가와 형제들은 아마도 어미가 제대로 키우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얗고 사랑스러운 이 강아지가 설탕이 그렇듯 늘 우리 가족과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슈가(Sugar)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슈가가 올 날이 다가올수록 단톡방은 점점 더 뜨거워졌다. 임보자는 슈가의 출국 준비과정과 근황을 매일 알려왔다. 봉사자들과 임보자 모두 쉽지 않은 일을 해내고 있음을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먼 곳에서 슈가를 맞게 될 우리를 배려해 더 많은 정보를 주고자 노력하는 그들이 고마웠다.

슈가와 나는, 시작은 우연이었지만 점점 필연이 돼가고 있었다.


✲ 이야기가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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