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나는 강아지를 입양할 준비가 다 돼있었는지도 모른다. 결정적인 순간에 도망쳤던 건 두려움 때문이었다.
강아지를 데려오면 달라질 내 생활을 감당할 두려움, 한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두려움, 내게 오는 강아지를 과연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어쩌면 그 두려움들은 열정을 잃어버린 데서 온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신중함이라는 구실 뒤에 열정을 잃어버린 겁쟁이 마음이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반려동물에 친화적인 우리 동네,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과 비교적 규칙적인 일상을 살고 있는 나, 동물을 사랑하는 우리 가족 ⎯ 용기가 부족했던 마음과 달리, 이만하면 강아지를 데려와도 괜찮을 환경에 나는 이미 살고 있지 않았을까.
드디어 슈가가 우리에게 오는 날.
인천 공항에서부터 열네 시간을 날아 뉴욕 JFK 공항에 내릴 슈가. 그 긴 시간을 화물칸 좁은 크레이트 안에서 잘 견뎌줄까.
슈가가 탄 비행기가 도착할 무렵 공항에 닿은 남편과 나는 한 시간 좀 넘게 기다려 드디어 이동봉사자가 데리고 나온 슈가를 만날 수 있었다. 화물용 밧줄로 덮인 크레이트 안에 하얀 슈가가 앉아있었다. 밧줄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슈가는 얼핏 보아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임보자가 보낸 서류들과 슈가가 갖고 놀던 장난감 몇 가지, 그리고 새로 산 듯한 겨울 옷을 이동봉사자에게서 전해받았다. 슈가를 향한 임보자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뭉클했다. "반가워. 수고했어. 이제 집에 가자" 하고 말했더니 밧줄 사이로 강아지가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첫 눈맞춤이 평생 잊히지 않을 거라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마침내 슈가와 함께 우리 집에 왔다. 감싸고 있던 밧줄을 힘겹게 끊고 크레이트 문을 열어주었다. 차멀미 때문이었는지 집에 오는 택시 안에서 토한 흔적, 바닥에 깔린 담요엔 용변을 본 자국이 있었다. 긴 시간 좁은 공간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안쓰러웠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던 슈가는 임보자가 보내준 공 장난감을 앞에 놓아주자 이내 밖으로 나왔다. 사람을 좀 경계한다는 말을 들어서 그렇게 빨리 크레이트 밖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게다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몸집이 커서 깜짝 놀랐다. 슈가는 몹시 꾀죄죄한 몰골로 여기저기를 냄새 맡고 다녔다.
공항에서 내 목소리를 들어서였을까 슈가는 나를 많이 의지하는 것 같았고, 반면 남편은 좀 무서워했다. 슈가와 함께 지내며 차차 알게 된 건, 슈가는 남자와 자전거, 수레나 카트가 땅에 끌리는 소리,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는 걸 무서워했다. 우리와 살면서 안 좋은 기억은 모두 잊고 오직 사랑받은 기억만 갖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분명 어제와 똑같은 집, 똑같은 공간인데 오늘 강아지가 들어와 있는 풍경은 무척 새롭고 신기했다.
슈가를 맞이한 순간부터 바쁜 날들의 연속이었다.
동물병원을 방문해 예방접종 확인과 간단한 검진을 하고, 뉴욕 시에 슈가를 정식으로 등록했다. 이제 슈가는 공식적으로도 우리 가족이 된 것이다.
미니는 인터뷰에서, 우리가 슈가를 계속 키울 것을 최종적으로 결정하기까지 2주의 유예기간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해서 이 먼 곳까지 온 슈가에 대해 어떻게 다시 생각할 수 있을까. 슈가가 우리에게 오기로 한 순간 더 결정하거나 생각해봐야 할 일은 사라진 것이다. 우리는 슈가가 여기 온 후의 소식을 단톡방에 꾸준히 알렸고, 우리에게 온 지 일주일 만에 슈가의 입양확정 절차를 모두 마쳤다.
슈가에게는 산책이 매우 중요한 일과이므로 나와 남편은 하루도 안 빠지고 슈가와 밖으로 나간다. 비교적 온순한 슈가는 산책만 나가면 다른 강아지가 된 것처럼 흥분을 하고 고집을 부려서 애를 먹고 있는 중이다. 마치 동네 모두를 자기 코로 삼키려는 듯 온갖 냄새를 다 맡고, 호기심도 대단해서 다람쥐나 비둘기를 마구 쫓아가거나 다른 강아지들을 보면 무작정 인사하러 뛰어간다. 슈가에게는 세상 모든 게 신기하고 재미있나 보다. 보호자와 보조를 맞춰 총총 걸어가는 강아지들을 볼 때마다 우리도 저럴 수 있을까 한숨이 나온다. 꾸준한 훈련과 우리와의 교감이 쌓이면 언젠가는 슈가와 여유롭게 걸을 날이 오겠지.
슈가와 우리의 루틴을 만들어나가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산책을 나가고 밥을 먹이려 하고 있다.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돼본 적 없는 새로운 캐릭터로 거듭났다 ⎯ 아침형 인간. 내 사전엔 없던 단어다.
아침에 눈을 뜨고도 침대에서 뭉기적거리는 일이 사라진 대신, 눈을 다 뜨지도 못한 채 강아지 목줄을 채워 막 눈 뜨기 시작하는 새로운 아침 속으로 나아간다. 철저하게 저녁형 인간으로 살아온 나는 처음 며칠은 정신없이 피곤했다. 다행히 슈가가 시원한 실외배변을 이루어갈수록 나의 일상도 점점 일정한 리듬을 타고 있다.
슈가는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며 무엇이든 안 가리고 잘 먹는데(너무) 몸매는 날씬하다(부럽). 별로 안 좋아하는 양치나 빗질을 당하면 삐쳐서 구석에 앉아있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바라본다. 슈가랑 살게 되면서 나는 자꾸 실없이 웃게 된다. 프리스쿨 아이들에게 불러주던 노래를 다시 부르게 된다. 슈가의 기분을 헤아려 알고 싶은 마음은 다른 이들을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번져간다. 좋은 친구를 사귀며 닮아가는 느낌이다.
슈가를 닮고 싶은 점 또 하나는 그의 네오테니(neoteny)다. 성견이 되고 노견이 되어도 강아지들은 아이처럼 순수하다. 성숙함 속에 담긴 아이의 특징, 어른이 되어서도 잊지 않고 간직하는 어린이의 마음을 나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하얀 털, 깊은 진갈색 눈동자, 반짝이는 검은 코, 쫑긋한 귀, 롱다리의 소유자, 아직도 사람이 무서워 선뜻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는 거리두기의 달인, 강아지 친구들을 만나면 신나게 뛰어노는 강아지계 인싸, 냄새 맡기를 진심 즐길 줄 아는 후각 전문가 슈가. 뽀송뽀송 아기 때의 슈가는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지만, 앞으로의 슈가의 삶이 나와 함께일 수 있어 행복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숨길 수 없는 게 사랑과 재채기라고 한다. 나는 거기에 강아지 꼬리도 넣고 싶다. 슈가의 꼬리를 보면 말하지 않아도 그의 기분을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슈가의 꼬리가 팽팽한 풍선처럼 언제나 하늘을 향해 올라가 있기를, 슈가가 우리와 함께 있어 행복하기를, 나는 오늘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