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가와 함께

by Anna Lee

슈가와 함께 산 지도 벌써 한 달이 훌쩍 넘어간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슈가는 마르고 털 숱도 별로 없어서 미리 사 둔 빗이 쓸모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는 제법 털도 찌고 살도 붙어 보인다. 아침에 슈가가 꼬리를 치며 다가올 때마다 전날보다 더 커진 것 같곤 했다. 얼마 전 두 번째 방문한 동물병원에서 몸무게를 재보니 한 달 사이 2kg이 불어나 있었다. 간호사는 앞으로 슈가가 적어도 20파운드(약 9kg)는 더 불어날 거라고 했다. 아이고, 곡 소리가 나올 뻔 한 걸 꾹 참았다. 지금도 힘이 세서 앞발로 나를 툭 치기만 해도 헉 소리가 나오는데 더 커진다고?

슈가는 믹스견이므로 얼마나 더 자랄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감당할 만큼만 커져라,라고 바라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우리가 체력을 기르는 편이 슈가와 함께 잘 살아가는 방법일 듯하다.


슈가는 하루 세 번 산책을 한다. 낯설어 그랬는지 처음에는 소방차나 트럭, 전동 킥보드가 빠르게 지나가면 한동안 얼어붙어 있기도 했지만, 이제는 실외배변도 편하게 하고 우리 동네에 점점 낯익어 가는 눈치다.

슈가는 아직 사람들은 무서워하지만 다른 강아지들과는 참 잘 논다. 어떤 친구든 안 가리고 잘 어울리는 슈가 덕분에 우리도 자연스레 다른 강아지 보호자들과 인사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

열 살, 열세 살, 두 마리 노견의 보호자인 할머니는 진돗개를 키우고 있는 한국인 이웃이 있다며 웨스티.진도 믹스인 슈가를 금방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할머니의 강아지 두 마리는 모두 유기견이었는데 안락사 위기에 처해 있어 데려왔다고 한다.

강아지 오딘은 오른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 점잖고 상냥한 오딘은 슈가와 재미있게 놀곤 한다. 길에서 이럴 게 아니라 도그파크(Dog Park)에서 만나 신나게 놀자고, 오딘의 보호자와 약속했다.

열두 살 강아지 레이는 다리가 불편한 친구다. 걷는 게 힘들어서 산책할 때 한참씩 서있곤 한다. 보호자는 레이가 쉬엄쉬엄 갈 수 있도록 언제나 격려해 주고 기다려준다. 슈가가 아픈 다리 쪽으로 다가갈 때를 빼고는 레이는 슈가와 다정하게 지낸다.

5개월 된 강아지 리지는 아침마다 도그파크 주변에서 마주치곤 했다. 슈가도 리지도 아직 어린 강아지 티를 못 벗은 나이라 누가누가 더 발랄한가 겨루기라도 하는 것처럼 놀았다. 슈가가 처음 도그파크에 가게 된 것도 리지의 보호자 제시카의 안내 덕분이었다.

아침 산책에서 자주 마주치는 강아지 고구마. 보호자와 인사하고 이야기 나누다 보니 한국 사람이어서 더욱 반가웠다. 고구마보다 슈가가 몸집이 훨씬 큰데도 둘이서 꽁냥꽁냥 잘 논다.

저녁 산책에서 만난 소피의 보호자 영이 씨도 한국 사람이었다. 영이 씨는 슈가의 이름을 듣더니 "어머 반가워요, 저 BTS 아미예요, 슈가 팬이고요" 했다. 그녀는 도그 파크에서 열리는 여러 가지 행사에 대해 알려주었고, 우리는 SNS를 통해서도 서로 교류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줄을 풀고 같이 뛰어논 친구 주니는 슈가와 동갑내기인 9개월 된 강아지다. 그날 어찌나 신나게 놀았는지 헉헉대며 집에 돌아온 슈가는 드릉드릉 코를 골면서 잤다.

산책하다 길에서 마주친 할머니 한 분이 슈가가 예쁘다며 가방에서 봉지째 간식을 꺼내 주기도 하고, 스타벅스에 가서는 휘핑크림도 얻어먹었다. 우리 동네 스타벅스에서는 커피를 주문할 때 펍컵(pup cup)을 달라고 하면 강아지가 먹을 휘핑크림을 조그만 컵에 담아 무료로 준다. 견생 처음 경험해 본 환상적인 크림 맛에 마음을 빼앗긴 슈가. 집에 오는 내내 자꾸만 날름날름 입맛을 다시는 슈가를 보며 남편과 나는 깔깔 웃었다.

아침 등교 시간과 오후 하교 시간에 건널목에서 교통 지도를 하는 아주머니는 데면데면하던 처음과 달리 이제는 슈가가 자신을 알아보고 쓰다듬는 것도 허락하자 굉장히 기뻐했다. 강아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분이란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 공원 벤치에 앉아 비둘기 먹이를 주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알게 되었다. 그들이 공원 근처에만 와도 어떻게 아는지 비둘기들이 여기저기서 모여들기 시작한다. 머리카락은 하얗지만 허리가 꼿꼿한 할아버지와 가을 단풍 색처럼 단발머리를 붉게 물들인 할머니는 비둘기들에 둘러싸여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다. 그들의 행복한 모습이 나의 아침도 밝혀주는 것 같다.

도그파크에서 만난 잭의 강아지 사이러스는 5개월 밖에 안 됐는데 덩치는 슈가보다 크다. 래브라도 리트리버.버니즈 마운틴 독 믹스견인 사이러스는 다 자라면 100파운드(약 45kg)가 넘을 거라고 한다. 잭의 여자친구 새라는 래브라도 리트리버를, 잭은 버니즈 마운틴 독을 원해서 그 두 강아지의 믹스견을 데려왔다고. 슈가와 사이러스는 죽이 잘 맞아 첫 만남부터 베프가 되었다. 잭은 매주 일요일 아침 도그파크 옆 공원에서 열리는 강아지 훈련 클래스를 우리에게 소개해 주기도 했다.

우리 집 건너편 아파트에 살고 있는 96세 할머니는 27년을 함께한 고양이를 얼마 전 떠나보냈다고 했다. 자신의 베개 위에서 매일 같이 잠들던 고양이가 너무 그립다는 그녀는 우리 동네에서 56년을 살아온 분이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할머니의 말씀에 깊은 뜻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집집마다 강아지로 인해 많은 이야기가 생겨나고 반려동물을 잘 키우기 위해 애쓰는 반려인들이 많다는 것을 나는 피부로 느낀다.

슈가와 함께 살게 되면서 그전에는 무심코 보아 넘기던 동네 길, 사람들, 지나가는 강아지나 길고양이, 다람쥐, 비둘기들도 더 자세히 보게 된다. 몰랐던 세상을 하나 더 보게 된다.


© Anna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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