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가랑 산책을 하다 커피가 고파져 카페에 들렀다. 우리 동네에서 제일 핫한 카페, 베이글과 커피가 맛있는 곳이다.
이른 아침,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아주머니 두 분이 창가 자리에 앉아 우리말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친구 좋아하는 슈가가 그냥 지나칠 리 없지. 강아지랑 인사하고 싶어 다가가는 슈가 덕에 아주머니들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중 한 분이 데리고 있는 강아지는 시골 동네에서 묶여 살던 걸 한국에서 직접 데려오셨다고 한다. 강아지들까지 모두 동향이라 한결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주머니 한 분이 내게 물어왔다. "교회 다녀요?"
미국에 살며, 처음 만나는 한국사람에게서 거의 매번 받는 질문이다. 초면에 너무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어서 적잖은 사람들이 피하고 싶어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한 번은, 친구랑 파크 야외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한국 분이 다가와 교회 브로셔를 주며 말을 건네왔다. 근처에 있던 그분에게 우리가 주고받던 한국 말이 들린 모양이었다. 그러자 같이 있던 친구가 돌연 "말씀 감사한데, 저희는 코네티컷에서 와서요" 해버리는 것이었다. 매우 실망한 얼굴로 돌아서는 그분을 보며 "왜 거짓말을 하고 그래?" 내가 말하자, 친구는 대답했다. "뻔한 소리 듣느라 시간 낭비 하고 싶어?"
"교회 다녀요?"라는 낯익은 질문에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하는 내게 아주머니는 다시 말씀하셨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나 봐. 그럼 우리 교회 나오세요. 예수 믿어야 해"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나 차 한 잔 같이 하기로 하고 카페를 나왔다.
내가 태어나 자란 우리 가족은 모두 성공회 신자다. 부모님이 성공회 성당에서 결혼했으므로 사람들은 나를 가리켜 모태 신앙인이라고 했다. 성공회는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개신교 범주에 든다고 볼 수 있지만, 천주교 성당과 비슷한 성공회 예배의 분위기 때문에 처음 교회에 갔을 때 몹시 낯설고 어색하던 기억이 난다.
시카고에서 우리 가족은 미국 교회에 나갔다. 나는 WIT(Women In Transformation)라는 이 교회 여성모임에 참석했다. 스무 명 남짓의 멤버들은 매주 만나 같이 기도하고 성경을 공부했다. Beatitude(팔복; 마태복음 5:3-10) 단 여덟 구절을 반년 동안 깊게 공부했던 것, 그리고 리더가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해 주었던 게 기억에 남는다.
WIT를 함께한 지 1년쯤 되었을 때, 좀 더 체계적으로 성경을 배울 수 있는 단체를 알게 되었다. 이 성경공부 모임은 교파나 교회를 초월해 성경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다. 1959년 설립되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100여 국가에서 성경 클래스를 운영하는 단체였다.
집에서 학습자료와 성경을 미리 공부한 후 토론에 참여하고 토론이 끝난 후에는 강의를 들었으므로 같은 내용을 세 번 익히는 셈이었다. 학기는 아이들 학교와 똑같이 9월에 시작되어 다음 해 5월에 끝났으며, 0-5세 아이들을 위한 성경공부 클래스도 있어 엄마들이 안심하고 성경공부 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다.
성경에 대한 목마름이 컸다는 걸 나는 성경공부를 시작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교회만 왔다 갔다 하면서 성경 읽기를 게을리하던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있었을까. 막연하기만 하던 그의 모습이 처음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이 모임에서 성경공부를 시작한 다음 해, 나는 그룹 리더의 추천을 받아 칠드런 리더(children's leader)로 일하게 되었다. 토론그룹 리더들과 칠드런 리더들은 학기 초에 세미나를 갖고 학기 중에도 매주 트레이닝을 통해 리더십을 튼튼히 다졌다. 특히 칠드런 리더들은 티칭에 사용되는 교육자료와 성경의 전달방법 등에 대해 늘 슈퍼바이저와 의논하고 다른 리더들과도 공유했다. 각 반마다 리더 두 명이 짝이 되어 가르쳤는데, 동료 리더와 함께 스케줄, 성경 이야기의 내용, 찬송, 그 밖의 활동 등을 계획했다.
학기 초에는 여기저기서 엄마 떨어지기 싫은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의 웃음과 노랫소리가 복도에 꽉 찼다. 클래스 루틴에 점점 익숙해진 아이들이 찬송을 따라 부르고 손을 모아 기도하고 Quiet time(모두 바닥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고 그날 배운 이야기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즐기는 걸 보는 건 기쁨이고 감동이었다.
나는 주로 0-3세 반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 특히 아직 돌이 채 안 된 아기들에게 성경 이야기를 들려줄 때 느꼈던, 뭐라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간단한 동작과 얼굴 표정을 맞춰가며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기들은 맑은 눈을 더 초롱거리며 들었다. 그 눈동자 하나하나가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돼주었는지 모른다. 두 살과 세 살 아이들한테는 성경구절과 함께 수어도 가르쳐주었는데 제법 잘 따라 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학기 마지막 날은 리더들과 수강생들이 한데 모여 한 학기 동안 성경을 배우며 느낀 것과 자신의 신앙 이야기를 서로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그날 오후 리더들은 같이 밥을 먹고 한 학기 동안의 수고를 서로 위로했다.
나는 이 모임에서 7년 동안 성경을 공부했으며, 그중 4년은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 불평과 걱정이 감사와 믿음으로 바뀌어 갔고, 일방적인 설교를 통해 듣기만 했던 예배가 성경을 읽고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기쁨의 예배로 나아갔다.
우리가 코네티컷에서 왔다던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언제쯤이면 우리는 '뻔한 소리'가 아닌 진정한 복음을 들을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우리는 '시간 낭비'가 아닌 다시 태어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