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미래

by Anna Lee

그해 가을은 어쩌면 내가 살아온 가을 중 가장 많은 생각이 오간 계절이었는지 모른다.

그동안의 삶을 뒤돌아봤다가, 봐도 보이지 않는 앞을 봤다가, 자꾸만 흐르는 시간 속에 무력해지기만 하던 날들이었다. 한없이 갈피를 못 잡는 날도 있었고, 도망치고 싶은 날도 있었으며, 뒤돌아본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리지 못한 채 굳어버린 날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바닥이 어디쯤 인지도 모르는 심연으로 떨어지고 있는 나 자신을 그냥 내버려 둘 수만은 없었다. 다시 물 밖으로 나와 온몸으로 햇볕을 받으며 숨을 쉬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때때로 몬테소리 스쿨 생각이 났다. 많은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프리스쿨에서 다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마침 첫째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해 곧 뉴욕으로 떠날 예정이었고, 둘째는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어서 아이들에게 내 손이 갈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가을이 깊어갈 무렵, 일자리를 찾기로 했다.

우선, 온라인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리고 누구나 볼 수 있게 오픈해 두었다. 그리고 거의 매일 사이트를 방문해 내가 원하는 조건과 맞는 곳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며칠 후, 새로 오픈하는 프리스쿨 몇 군데에서 오퍼가 들어왔다. 대부분 우리 집과 멀고 일에 비해 보수가 적은 곳들이었다. 나는 일하고 싶은 프리스쿨 대여섯 군데에 직접 이력서를 보내보았고, 그중 두 곳에서 연락을 받았다. 먼저 인사담당 직원과 전화 인터뷰를 한 후 현장에 가서 다시 인터뷰를 해야 했다.

한 군데는 내가 맡고 싶은 연령의 아이들이 아니라 정중히 거절했다. 나머지 한 군데는 20분 정도 운전해 가야 하는 옆동네였지만 전화 인터뷰 느낌이 좋아서 가보기로 했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프리스쿨은 깔끔하고 예쁜 단층 건물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0-5세 반 열 개 교실이 중앙 홀을 중심으로 디귿 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디렉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 2세 반 아이들이 요가를 하기 위해 중앙 홀로 나오는 게 보였다. 그 조그만 몸으로 열심히 요가 동작을 따라 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오고 설렜다.

디렉터와 인사를 나누고 나서 *온사이트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아이들과의 상호작용, 교사들과의 의사소통 등을 교실에서 평가받는 자리였다. 나는 가장 어린 영아반과 4세 반의 임시 교사가 되어 온사이트 인터뷰에 임했다. 4세 반에서 바깥놀이 시간에 한 아이와 오래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난다. 무슨 이야기였는지 다 생각나지는 않지만 우리는 꽤 즐거웠던 것 같다. 나는 아이의 눈동자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면서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두 시간 남짓 온사이트 인터뷰를 마치고, 오피스에서 디렉터와 면접을 이어갔다. 스무 개 정도의 질문이 주어졌는데, 대답이 좀 궁할 때는 디렉터가 나를 살짝 도와 유연하게 넘겨주기도 했다. 채용 여부를 떠나 그녀의 마음씀이 고마웠다.


그로부터 1주일 후, 언제부터 일할 수 있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내가 일하게 된 회사는 1986년 설립되어 아동 교육과 보육 서비스를 제공해 온 곳이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700여 개, 그 밖의 나라에서 300여 개의 시설을 운영하는 기업이기도 하다. 이곳의 아이들과 교사들, 그리고 나에게도 회사 이름처럼 ‘밝은 미래’가 펼쳐지기를, 나는 기쁜 마음으로 바랐다.

보충 서류 제출과 급여 인터뷰까지 마친 날은 내 생일이어서 더 기뻤다. 간단한 건강검진과 예방접종을 모두 마치고 1주일 뒤 출근하기로 하고는 센터 문을 나서는데, 공기도 하늘도 온통 나를 향해 쏟아져내리는 것 같았다. 누군가 내게 하늘을 날아 보라면 날아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꿈꾸던 일이 현실이 되니 오히려 더 꿈인 듯,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그곳에서 열심히 일하며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들에게서 내 아이들의 어릴 때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어느 날은 내 어릴 때 추억이 겹치기도 했다. 아이들, 동료 교사들, 식사담당 셰프, 슈퍼바이저들, 그리고 디렉터와 배우고 나누었던 시간들은 빛나는 기억이 되어 내 삶의 서랍 속에 소중하게 담겨 있다.



* 디렉터(director): 시설 운영의 총책임자. 원장

* 온사이트 인터뷰(onsite interview): 사무실이나 교실 등 현장에서 진행하는 면접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