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스윗 홈

Home Sweet Home

by Anna Lee

가끔 슈가가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볼 때가 있다. 두 귀를 쫑긋거리며 몹시 집중해서 뭔가를 보는 듯하다. 그러다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거나 뭐라 말하는 것처럼 그르릉 소리를 내기도 한다. 마치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강아지한테 말을 거는 것 같다. "안녕! 넌 어디 살아? 난 여기 사는데. 여기가 우리 집인데."

어딘가에서 태어나 보호소로, 임보자들에게로, 그리고 머나먼 이곳까지 오게 된 슈가. 이제 머물 집과 가족이 생겼지만 가끔은 슈가도 고향이 그리울까.

미국에 와서 벌써 세 번째 주(State)에 살고 있는 나. 지금은 가족과 여기서 살고 있지만 언젠가 그리운 고향에 돌아갈 꿈을 꾸는 나는 슈가와 어딘가 닮아있는 것 같다.


사람에게는 회귀본능이 있다고 한다. 태어난 옛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곳에 가면 왠지 안심될 것 같은 기분이 그런 걸까.

동물들의 신비로운 귀소본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가령, 연어가 산란을 위해 험난한 길을 마다하지 않고 태어난 곳으로 돌아간다든지, 새들이 번식과 월동을 위해 매번 같은 경로를 날아 장거리를 이동한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왠지 나를 숙연케 했다.

서울에 살 때, 술에 잔뜩 취한 남편이 용케 집을 찾아 들어오는 걸 보며 이게 귀소본능일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건 본능이라기보다, 어쨌든 외박은 안 된다는 도덕적 의무감이거나 빨리 편한 곳에 몸을 누이고 싶다는 욕구에서 비롯된 행동이 아니었을까.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고향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던 나는 이곳 미국에 와 살며 향수병을 진하게 앓고 나서야 비로소 고향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 절절한 그리움은 앓고 또 앓아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명절 때마다 고향을 향하는 자동차들이 도로를 가득 메우는 걸 보면서, 마치 당연한 듯 보이는 그 풍경이 무엇을 말해주는지 곰곰 생각해 보게 된다. 미국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땡스기빙이나 크리스마스에 떠난 지 오랜 고향집에 가족과 다시 모여 밥을 먹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성경에도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둘째 아들의 이야기가 있다(누가복음 15:17-20). 내가 태어나 자란 곳, 같이 살았던 가족에게서 느끼는 안온함은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슈가도 고향을 생각할까. 고향의 냄새를 기억하고 있을까. 나도 언젠가 고향에 돌아가 살 수 있을까, 슈가와 함께.

나는 안다, 고향에 돌아가도 어릴 때 누렸던 기분은 다시 가질 수 없다는 걸. 고향도 나도 어느새 변했다는 걸. 그러나 고향에 가서 살고 싶은 마음만은 변하지 않는다. 본능과 감각에 의지하는 동물과 달리, 사람인 나에게는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기억이 만들어내는 심상과 그 심상이 주는 편안함이 자꾸만 고향을 부른다. 사라지고 없는 것들이라도 흔적은 남는 법이니까. 세상에 의미 없는 건 없으니까.

혹시 고향에 돌아가도 여전히 아싸(아웃사이더)로 살아야 한다면 ⎯ 어차피 나는 아싸가 좋다. 무리의 중심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드는 게 좋고, 약간의 외로움은 두렵지 않으며, 누가 뭐라든 오롯이 나 자신일 때가 제일 좋기 때문이다.

어디서 살든 나의 노래, 아싸의 노래는 이어질 것이다. 단조로 또는 장조로, 뛸 듯이 빠르게 또는 숨을 고르듯 천천히 ⎯ 계속될 것이다.


G-Dragon, <Home Sweet Home>


<아싸의 노래>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읽어주시고 소중한 말씀 나누어주신 글벗님들께 진한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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