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a Lee Apr 07. 2022

강소천의 동화와 나의 꿈

어렸을 때 제일 많이 읽었던 책이 강소천 선생님의 동화였다.

내가 직접 그의 책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고, 다른 아이들이 그렇듯 엄마의 선택이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외할머니의 선택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엄마가 외가에서 막내 외삼촌과 이모가 보던 강소천 선생님의 동화책들을 몽땅 가져다준 때문이었다. 그 시절 나왔던 책들보다도 10년은 더 된 책들이었지만, 어른이 된 지금도 그의 동화 이야기들을 잊을 수가 없다.


강소천은 1915년 9월 16일 함경남도 고원 군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뫼 뚜니'라고 불리는 산골 마을로, 눈이 많이 오고 바람이 세게 부는 곳이었다. 그의 어릴 때 이름은 용률이었는데, 동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작은 샘'이란 뜻의 소천이란 이름을 썼다고 한다. 그는 어릴 때 매우 개구쟁이였지만, 책을 좋아해서 별명이 책벌레였다고 한다.

강소천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의 중학교인 영생 고등 보통학교에 들어갔다. 고등 보통학교 1학년인 열여섯 살에 어린이 잡지 ⟪아이 생활⟫에 "버드나무 열매"라는 동시를 발표한 그는 어린이들을 위한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동화와 동시를 통해 나라를 빼앗기고 힘들게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그는 이런 마음을 담아 동시 "닭"과 동화 "돌멩이"를 썼다.

1945년 해방이 되자, 그는 중학교 국어 교사가 되어 학생들에게 우리말과 글을 가르쳤다.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그동안 틈틈이 쓴 동시와 동화가 든 공책을 가지고 거제도로 갔다. 돈이 없어 힘든 일을 하며 살았지만, 전쟁 때문에 부모와 고향을 잃은 아이들을 위해 늘 글을 쓰고 싶었던 그는 부산에 가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교과서와 어린이 잡지 만드는 일도 했다.

1955년에는 한국아동문학 연구회를 만들어 동화와 동시를 쓰는 사람들의 모임을 갖기도 했다. 그러면서 동화집 ⟪조그만 사진첩⟫, ⟪꽃신⟫, ⟪진달래와 철쭉⟫, ⟪꿈을 찍는 사진관⟫을 발표했다. 이 동화들은 전쟁으로 슬프고 가난했던 어린이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꿈을 주었다. 그는 언제나 어린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동화를 통해 따뜻함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려 했다.

그는 1957년 어린이 헌장을 만들었다. 동화집 ⟪종소리⟫, ⟪무지개⟫, ⟪인형의 꿈⟫, ⟪대답 없는 메아리⟫, ⟪어머니의 초상화⟫, ⟪그리운 메아리⟫를 만들었고, 쉬지 않고 동화를 쓰고 연구하다 1963년 48세에 세상을 떠났다.


나는 어릴 때 강소천 선생님이 살던 청파동과 가까운 곳에 살았는데, 그의 동화에 나오는 토끼굴이 정말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아서 찾아가 보기도 했었다. 그의 동화에 나오는 어떤 아이처럼 달님에게 편지를 써서 밤에 장독대 위에 놓아둔 적도 있다. 나무와 새, 달과 별, 고양이와 아기도 자기들만의 비밀을 속삭이며, 이 세상에는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거라고 상상했었다.

그의 동화를 읽으면서 나도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처음 가지게 되었다.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그의 동화 이야기가 있다.

주위에서 늘 동생 석렬이보다 못하다는 말을 듣는,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석민이란 아이의 이야기였다. 그런 석민이에게 힘을 주고 위로해 주던 옆집 소녀가 어느 날 이사를 가게 된다. 친구가 이사 가던 날, 석민이는 친구를 한번 더 보려고 학교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집에 가지만, 친구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석민이는 오는 길에 친구를 주려고 산 예쁜 빛깔의 풍선들에 작은 편지를 매달아 친구가 갔을 곳을 향해 하늘로 하늘로 날려 보낸다.

어릴 때였는데 이 이야기를 읽고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났다. 석민이와 친구가 다시 만나게 되기를 간절히 빌었다. 지금은 이메일이나 전화로 멀리 있는 친구와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때는 친구와 헤어지면 영영 다시 만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안타깝고 가슴 메어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금, 그리고 내가 우리 아이들을 키울 때도 우리 곁에는 언제나 좋은 동화들이 있었다. 그런데 가끔은 강소천의 동화와 같은 고전들이 그리워진다. 어릴 때 읽었던 동화는 어른이 되어서도 잊히지 않고 가슴 한 구석에 남았다가 문득 생각이 난다.

정서발달과 언어발달이 이루어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읽는 책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삶의 곳곳에서 영향을 주는지 모른다. 아이들의 지능을 높여주고 말을 잘하게 만들어주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동화는 가져다준다.   


강소천의 동화와 동시들 없이는 내 어린 시절에 대해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언젠가 나도 아이들이 읽고 슬픔, 즐거움, 그리움, 희망, 이런 여러 가지 감정을 가슴에 품고 자라게 돕는 글들을 써보고 싶다.

자꾸만 꿈을 꿀 수 있어서 살아있는 게 행복하다.

어린 시절 내게 동화가 없었다면 꿈꾸는 방법을 몰랐을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몬테소리 교육이 놓치고 있는 것들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