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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Jun 02. 2022

검둥이 삼보와 나

최근, BTS(방탄소년단) 멤버들이 백악관을 방문해 바이든 대통령과 면담을 갖고, 아시아계 혐오 범죄 대응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고 한다.

그들은 백악관 브리핑 실에서 출입기자들이 밀집한 가운데, 한국어로 짧은 연설을 했다. K-pop을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즐기듯,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뉴스를 접하면서, 오래된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내가 다니던 유치원에서 졸업식을 앞두고 학예회가 열렸었다. 장소의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높은 무대가 있는 꽤 큰 홀이었다. 만 여섯 살배기 눈엔 어마어마하게 넓어 보였다.

객석은 우리를 보러 온 가족들로 꽉 찼다. 우리는 각자 피아노 한 곡을 연주하고, 합창과 댄스도 했다. 나는 소곡집에 있던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라는 곡을 연주했다.

나에겐 잊을 수 없는 순서가 있었는데, '검둥이 삼보'라는 노래극이었다. 나는 주인공 삼보 역할을 맡았었다. 연극에서 주인공을 해본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학예회를 앞두고 매일 유치원에서 맹연습을 하던 생각이 난다. 노래와 동선을 익히고, 친구들과 호흡을 맞추고, 가끔은 선생님한테 혼도 나면서 힘이 들었지만 "나 안 해!" 한 번 없이 무대에 올랐던 건 내가 삼보 역할을 꽤 좋아했기 때문인 것 같다.


삼보는 엄마가 만들어준 새 옷과 선물 받은 신발, 우산으로 멋지게 차리고 나갔다가 호랑이들을 만나 모두 빼앗기게 된다. 삼보의 물건을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던 호랑이들은 나무 둘레를 너무 빨리 돌다가 녹아 버터가 된다. 삼보와 삼보의 아버지는 호랑이가 녹아 생긴 버터를 항아리에 담아 집으로 가져온다. 그리고 삼보의 어머니가 그 버터로 팬 케이크를 만들어 온 가족이 실컷 먹는다는 이야기이다.

추억 속에 있던 스토리를 꺼내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호랑이가 녹아서 버터가 된다고? '검둥이'는 또 뭐람?

동화의 환상적 요소를 고려하면 버터는 용서가 된다. 그러나 제목의 '검둥이'라는 말은 요즘의 정서와 맞지 않고 교육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헬런 배너먼이 1899년 발표한 그림동화 <검둥이 삼보>는 실제로 인종 차별의 논란을 야기했다.

"호랑이 아저씨~ 잉잉잉~" 하던 노랫말까지 기억나는 추억 속의 삼보 이야기가 유색인종을 비하하는 정서로 가득했다니 좀 씁쓸했다.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차별과 편견의 습관들이 우리에게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몇 년 전, 성경공부 모임에서 어떤 한국 분이 꼭 한국인 며느리를 보고 싶다고 거듭 강조하는 걸 들었다. 같이 있던 미국인 친구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걸 보고 좀 민망했었다. 같은 한국인인 나는 그렇게 말하는 그분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외국인들에겐 인종 차별로 들리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의 첫 영어 튜터였던 제니퍼는 언젠가 딸이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결혼한다고 하면 허락하겠냐고 물었다. 나는 얼른 대답을 못하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선입견이 사라져야 한다는 둥 딴소리를 하다가, "그럼, 제니퍼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제니퍼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괜찮다고 했다. 그것도 하나의 차별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저 그녀의 바람을 말한 것으로 이해했다. 그보다, 대답을 뭉갰던 내가 부끄러웠다.


인종 차별은 내가 살고 있는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람이 모여 사는 곳 어디에나 각종 차별과 배타의 악습은 존재한다. 알게 모르게 우리 주변엔 차별과 편견의 웅덩이들이 여기저기 깔려있어 자칫 발이 빠지기 쉽다.

BTS가 우리나라를 벗어나 세계로 도약한 지 오래다. 이제 그들은 한국의 아이돌 그룹만으로 불리지 않는, 인종과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은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다. 우리만의 스타가 아닌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어져 있고 점점 더 가까워진다. 더 이상 차별의 프레임에 갇혀 서로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현실은 어둡지만, 장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좀 더 밝아지지 않을까.

<검둥이 삼보>가 이제 더 이상 아이들에게 읽히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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