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에 들어설 때의 기분을 좋아한다.
고궁 안에 미술관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잔잔해진다. 그중에서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내가 유난히 좋아하는 곳이다. 한옥의 처마를 지나 현대 건물로 이어지는 순간, 시간과 시간이 겹쳐지는 듯한 느낌이 좋다. 전시도 늘 믿음직하다. 원로 작가나 미술사의 중요한 흐름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아, 조용히 천천히 감상하기에 적당한 곳이다.
아이와 함께 그 미술관을 자주 찾았다. 전시를 보고 덕수궁을 산책할 수도 있어서.
아이의 오른쪽 팔과 다리는 조금 불편하다. 외형만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금세 피곤해지고 팔다리에 무리가 오면 버티기 어렵다. 아기 때부터 유독 안아달라는 일이 많았고, 아이가 자라면서는 안아주는 게 힘들어져 업는 일이 많아졌다.
그래서 우리는 큰 아이용 유아차를 쓴다. 오래 걷는 날이면 어김없이 꺼내 든다.
물론, 참견도 따라온다.
“애가 다 컸는데 왜 유아차를 타고 다녀요?”
“좀 내려서 걸어야지.”
이런 말들은 이제 너무 익숙하다.
모르는 사람들이 던지는 말에 마음을 내어주지 않기로 했다. 애쓰는 일에는 굳이 설명이 따라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은, 설명조차 통하지 않는 순간이 있다.
덕수궁 미술관 입구는 계단이다. 유아차를 들고는 오를 수 없어 직원에게 엘리베이터를 물었다. 건물 뒤편, 조금 더 돌아가야 하는 곳에 있다고 안내받았다.
직원은 친절했지만, 마음 한켠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장애인용’이라는 이름이 붙은 시설은 늘 ‘한 발 더 돌아가야 하는 곳’에 있어야 할까.
왜 유아차나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더 먼 길을 선택해야 할까.
전시장 안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작품을 감상하려 유아차를 접어두고, 아이와 함께 걸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힘들다고 해 업어주었다. 사람이 많긴 했지만 조심하며 볼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전시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관리 감독하시는 분이 다가와 말했다.
“아이 내려서 걷게 하세요. 큰 아이잖아요.”
다짜고짜였다.
아이가 왜 걷기 어려운지 묻지 않았다. 상황을 살펴볼 여지도 없이, 규칙 위에서 내린 판단 같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감정보다 말이 먼저 멎었다.
정확히 설명하고 싶었다. 조용히 이해받고 싶었다.
그런데 입 안에는 쓴말이 먼저 맴돌았다.
나는 그냥 “조심해서 다닐게요”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곧 후회가 밀려왔다.
그날 이후로도 종종 그 장면이 떠오른다.
아이를 업은 내가, 그분에게는 ‘예의 없는 보호자’처럼 보였겠지.
장애인과 함께 살아본 사회였다면, 그분도 사정을 물었을까.
나도 조금 더 침착하게 설명할 수 있었을까.
그럴 수 없었던 건 서로의 탓이라기보다는, 함께 살아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아이와 미술관에 갈 때마다 조금 더 조심하면서도 단단해진다.
유아차를 끄는 손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도, 더 이상 설명 없이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면서
미술관 방문 Tip
• 유아차/휠체어 접근 경로 미리 확인하기: 일부 미술관 입구는 계단일 수 있어요. 사전 전화 문의나 홈페이지 확인으로 엘리베이터 동선을 알아두면 편리합니다.
• 도움이 필요할 땐 주저 말고 요청하기: 입장이나 이동이 어려운 순간엔 안내 직원에게 요청하세요. 친절하게 도와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 ‘이해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예감에 흔들리지 않기: 감상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어요. 누군가의 기준 밖에 있어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