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자라며 달라진 감상법
미술관에 간다고 하면 누구보다 먼저 신나던 아이였다.
언제 물어봐도 "갈래!" 하고 크게 대답했고, 나보다 먼저 신발을 신고 현관에 나가 있었다.
전시를 다 보고 나면 꼭 “재미있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작가 이름은 기억하지 못해도, 그림의 색깔과 느낌은 고스란히 떠올리던 아이였다.
그랬던 아이가, 어느 날 미술관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열 살, 영국 여행 중이었다.
관광지라면 으레 포함되는 유명 미술관들을 며칠 내내 돌아다녔다.
그중 테이트 모던에서는 유독 오래 머물렀다.
전시장 곳곳을 누비고, 체험 공간에서는 한참을 머물며 좀처럼 나오려 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보고 싶어"라고 말하던 아이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내셔널 갤러리에선 달랐다.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발걸음을 멈추더니,
"나 그냥 여기 앉아 있을래" 하고는 조용히 구석 의자에 앉아버렸다.
카라바조 특별전이 열리던 방 하나만 슬쩍 훑고는, 다음 방에선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 뒤로는 매일 미술관 이야기를 꺼내도 고개를 저었다.
“이젠 재미없어. 그냥 아빠랑 카페에 있을래.”
당황스러웠다.
멀리까지 와서, 평소엔 그렇게 좋아하던 미술관인데 왜?
여기까지 와서 이걸 안 보다니, 이건 다시 보기 힘든 작품인데…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말했다.
“이건 꼭 봐야 해. 지금 안 보면 언제 또 보겠어.”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그래, 보기 싫으면 관둬라. 엄마는 신나게 보고 올게!”
쿨하게 돌아섰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그림은 엄마나 좋아하지”, “책 보러 갈 거면 나 데려가지 마” 같은 말은 안 들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에선 결국 큰 말다툼까지 벌어졌다.
아이를 정원에 남겨두고 혼자 전시실을 돌았다.
몇 번을 와도 다 못 볼 만큼 방대한 이 미술관을, 저 아이는 보지 않겠다고 한다.
서운한 마음에 혼자라도 부지런히 챙겨보자며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문득, 2층 창문 너머 햇살이 쏟아지는 중정이 눈에 들어왔다.
분수대 앞 테라스, 아이와 아빠가 나란히 앉아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에 잠시 멈춰 섰다.
씁쓸한 웃음이 났다.
우린 각자 자기 방식대로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알았다.
아이는 이제 감상의 속도와 방향을 스스로 조절할 줄 아는 나이가 된 것이다.
크고 유명한 전시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작은 전시를 고르고,
혼자만의 속도로 여운을 곱씹으며 고요히 감상하는 아이.
대형 미술관을 매일 연달아 도는 일정은 사실 어른에게도 버겁다.
감상이란 많이 보여주는 게 아니라, 오래 남게 하는 일이라는 걸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서울로 돌아온 뒤, 아이는 다시 그림 보러 잘 따라나선다.
화가 나서 그랬을 뿐, 사실은 누구보다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
나는 여유 있게 배려하는 엄마인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쉽게 조바심내고, 감상을 강요할 때도 있다는 걸 이번 여행에서 알게 되었다.
작품 앞에 나란히 서지 않아도, 우리는 여전히 함께 감상 중이다.
조금의 거리와, 각자의 리듬을 두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