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가면 자연스럽게 미술관부터 찾아보게 됐다.
새로운 도시의 풍경과 맛도 좋지만, 그곳의 미술관에 들러 그림을 보고 나오는 하루가 있을 때 여행이 더 풍성해지는 느낌이 든다. 아이와 함께 다니기 시작하면서는 더욱 그렇다. 전시장을 걷고, 그림을 보고, 기념품 가게에 들르는 루틴이 어느새 익숙한 여행의 일부가 되었다.
2024년 겨울, 홍콩 여행 중에도 미술관은 빠지지 않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단연 홍콩 팔레스 뮤지엄이었다.
전통 중국 건축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으로, 내부의 세 개의 아트리움은 자금성의 중앙축을 현대적으로 표현해 방문객의 동선을 자연스럽게 유도했다.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문화를 잘 연결하는 장소 같았다.
전시관을 오르내릴 때마다 창밖으로 빅토리아 하버가 보였고, 미술관 자체가 풍경 안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 좋았다.
그날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품 전시, <보티첼리에서 반 고흐까지>가 열리고 있었다.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이어지는 유럽 회화의 큰 줄기를 따라가는 구성이라 익숙한 작가들도 많았고, 아이도 흥미롭게 보았다.
특히 반 고흐의 작품을 기반으로 연출한 미디어 전시 공간에서 아이가 오래 머물렀다.
“꽃이 움직여! 나비도 날아다녀!”
나는 반 고흐는 역시 그림으로 보는 게 좋은데, 아이는 그 공간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꽃이 보인다며 한참을 구경했다.
전시를 다 보고 나오면 꼭 들르게 되는 곳, 미술관 샵.
나는 늘 그렇듯 오늘 본 그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마그넷으로 고르기로 했다. 오래 고민하다가 토머스 로렌스의 초상화 <찰스 윌리엄 램튼>을 골랐다. 붉은 옷을 입은 소년이 의자에 앉아 있는 작품인데, 익숙한 그림이지만 그날은 유독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그 공간에서 마주친 ‘레드보이’는 더 깊게 다가왔다.
아이가 내 옆에서 이것저것 보더니 이 마그넷을 가리키며 “엄마는 이게 좋을 것 같아”라고 말했다. 내가 고르려던 바로 그거였다. 우연인가 싶었는데, 계산하고 나오는 길에 아이가 말했다. “내 마음에 들었던 건 아니었는데, 엄마가 좋아하는 것 같았어.”
그날 아이는 자기 마음에 드는 마그넷이 아니라, 날 위한 마그넷을 골라주었다.
나는 항상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그림으로 마그넷을 고르는데, 그날 아이는 내가 좋아할 것 같은 작품을 골라주었다. 함께 본 그림이었고, 내가 오래 바라본 장면이었다.
그림을 산 것이 아니라, 그날의 시간을 붙잡아 두는 일 같았다. 아이가 골라준 마그넷 하나로 이 여행의 한 장면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게 될 것 같다.
우리에게 미술관 샵은 전시의 마지막 장면처럼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전시가 끝나도 완전히 끝난 느낌은 아니다. 전시에서 봤던 그림들을 다시 떠올리며, 어떤 장면이 가장 마음에 남았는지, 무엇을 가지고 돌아가고 싶은지 생각하는 시간.
결국 여기까지가 우리의 미술관 감상이다.
아이와 나는 미술관을 나올 때 기념품 샵에서의 쇼핑을 즐긴다. 우리는 이제, 쇼핑까지 미술관 감상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