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배우는 현대미술 감상의 기술
스스로 전시를 찾아보기 시작한 건 중고등학생 때부터였다. 화집을 모으고, 미술관에서는 그림 앞에 조용히 서서 내 감정에 집중하며 감상했다.
그러다 현대미술을 만났다. 감정은커녕 ‘이걸 왜?’ 싶은 마음이 먼저 들었다.
메시지를 생각하라고?
해설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작품을 본다”는 게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건 느낌보다 ‘이해’에 가까웠다.
감동 없이 바라보는 게 ‘감상’ 일 수 있을까?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아이는 그 세계를 아주 쉽게 건너갔다.
마치 원래 자기 동네라도 되는 것처럼, 현대미술의 낯선 언어에 주저함이 없었다.
설명도 필요 없었다. ‘이상한 게 재밌다’며 웃었고, 전시장 바닥에 앉아 작품을 그렸다.
2023년 서울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전시 《WE》에서도 그랬다.
전시장 입구에 널브러진 노숙자 모형을 본 순간, 사진 찍으려던 내 팔을 아이가 잡으며 말했다.
“엄마, 사진 찍으면 안 돼. 다른 사람을.”
진짜 사람인 줄 알았던 거다.
웃음이 나왔지만, 그보다 인상 깊었던 건 아이의 ‘반응 속도’였다.
작품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도 전에 감정이 먼저 반응했다.
맞다. 예술에 대한 감상은 ‘의미 해석’이 아니라 ‘감정 반응’에서 시작할 수 있다.
카텔란은 사회풍자와 해학, 죽음과 자본주의를 주제로 작품을 만들어온 이탈리아 작가다.
사람을 모방한 조형물부터 바나나를 테이프로 붙인 《Comedian》까지, 늘 경계선을 넘나 든다.
나는 그의 작품 앞에서 “이건 풍자인가? 조롱인가?”를 고민했고,
아이는 작품 앞에서 잠시 멈췄다가 고개를 갸웃하거나 웃었다.
그게 전부였지만, 충분했다.
2025년 DDP에서 열린 톰 삭스의 《스페이스 미션》 전시는 또 달랐다.
DIY로 만든 우주정거장, 수십 개의 기계와 구조물, 관람객이 조종사가 되어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
미국 작가 톰 삭스는 나사( NASA )를 오마주 하면서도 기계적인 틀 안에 유머와 허술함을 덧댄다.
아이에겐 거대한 놀이 공간이었다.
“여기 진짜 우주 같아”
두 눈을 반짝이며 공간을 누볐다.
나는 '과학과 예술의 경계', '현대인의 우주 욕망' 같은 해석을 떠올리고 있었지만, 아이는 그냥 그 안에서 놀았다.
해석이나 맥락 없이도 충분히 ‘감상’이 되는 순간을 보여줬다.
나는 현대미술 앞에서 “이건 어떻게 읽어야 하지?”를 먼저 떠올렸고,
아이는 “이건 뭐야?”라고 물었다.
나의 질문은 이미 해석을 전제로 하고 있었지만, 아이의 질문은 열린 상태였다.
해석보다 감각이 먼저였고, 비판보다 호기심이 앞섰다.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저렇게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유가 뭘까.
특별히 배운 것도, 더 많이 본 것도 아닌데 왜 나보다 더 자연스럽게 작품과 연결되는 걸까?
혹시 나보다 더 ‘현대’의 사람이라 그런 걸까?
더 익숙하게 질문하고, 가볍게 반응하고, 부담 없이 받아들이는 그 태도.
그게 현대미술에 필요한 감상법이라면, 나는 그동안 너무 진지하게, 너무 무겁게 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보며 나도 다시, 느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