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게 좋다는 아이

by 김리온

아이는 “나 유튜버나 아이돌 할까?”라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자기에게 익숙하고 자주 보던 존재들이라서 특별한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최근에는, “사진작가나 그림 그리는 작가도 해볼까?”라고 말했다. 그것도 아이에게는 익숙한 존재여서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생각해 보면 아이는 살아오면서 무대 위 가수보다 전시장에서 작가를 더 많이 봐왔고, 창작보다는 감상 속에 오래 머물러왔다. 그게 특별하다는 의식도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장난감을 좋아하지만, 아이가 더 오래 붙잡고 노는 건 가짜 보석이나 큐빅, 구슬 같은 것들이다. 반짝이는 걸 모아서 색깔별로 분류하거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책상 위에 배치한다. 그걸 두고 “이건 내 작품이야”라고 말한다. 만들기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고, 그림 그리는 걸 오래 하진 않지만, 좋아하는 색을 고르고 더 예쁜 조합을 찾아보는 일에는 집중력이 생긴다.

예전엔 단지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감상이 일상 속으로 스며든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미술관에서 본 작품을 따라 그리거나 설치물을 재현한 적은 없지만, 전시에서 느꼈던 색감이나 구조, 분위기 같은 것들을 자기 식으로 흡수해 표현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전시에 대해 따로 설명을 많이 해주지 않아도, 아이는 작품을 잘 기억한다. 작가 이름이나 배경 이야기를 자세히 알려준 적은 거의 없지만, 다음에 우연히 다른 전시에서 같은 작가의 그림을 보면 “이거 전에 봤던 거지?” 하고 스스로 알아본다. 그림을 공부하지 않아도, 감각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이는 무엇을 만들겠다는 의도보다, 뭔가를 ‘예쁘게 두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 선을 정리하고, 색을 고르고, 물건을 모아 나열하는 식이다. 때로는 그냥 쌓아만 놓은 것도 자기 작품이라고 했다. 결과물이 없어도 괜찮다는 듯, 놀이처럼 자기 감각을 믿고 있었다.


아이를 보면 예술은 기술이 아니라 감각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예쁘다는 말, 좋아한다는 말, 이 색이 좋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꺼낼 수 있는 건 사실 꽤 용기 있는 일이다. 어른들 사이에서는 그런 감각적인 언어가 무의미하거나 가볍다고 여겨지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아이는 그런 말들을 자주 한다. 본인이 좋아하는 걸 알아가고, 표현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다.

돌아보면 아이는 열 살이 넘는 시간 동안 미술관과 함께 자라왔다. 전시장에 걸린 수많은 그림들, 전시의 구조와 분위기, 관람하는 사람들의 태도 같은 것들이 아이에게 차곡차곡 쌓였다. 그 감각은 놀이의 방식으로, 언어의 선택으로, 취향의 방향으로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미술관이 아이를 예술가로 만들어줄 거라고 기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감상자로, 감각을 알고 표현할 줄 아는 사람으로는 자라게 해 준 것 같다.

감상을 통해 감각을 키우고, 표현하는 법을 익히는 데 분명 도움이 되었고,

무엇을 잘 만드는 것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말할 수 있는 태도가 참 귀하게 느껴진다.

아이에게 예술은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어렵지 않은 무엇이다.

그건 삶의 방식이 되었고, 익숙한 놀이가 되었고, 자기표현의 한 부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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