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by 김리온

처음 미술관을 찾기 시작한 건 육아가 벅차던 시절이었다.
아직은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와 하루를 함께 보내다 보면
서로의 마음을 알 길이 막막할 때가 많았다.
미술관은 조용했고, 아이는 유모차에 앉아 천천히 주변을 바라보았다.
그림 앞에서는 말이 필요하지 않았고, 그 시간이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조금 시간이 흐르고, 아이는 학교에 가지 않게 되었다.
장애는 있었지만, 오히려 그보다는 적당한 학교가 없다는 사실이 더 큰 이유였다.
대안이 없어서 선택한 홈스쿨링은,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많은 시간을 열어주었다.
우리는 종종 미술관을 찾았고, 감상을 함께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날의 대화와 인상은 일기처럼 쌓였다.

미술관에서의 시간은 단지 교육적인 의미로 남지 않았다.
우리는 그곳에서 서로의 속도를 알게 되었고, 무언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방식,

멈추고 바라보는 습관, 표현하지 않아도 공유되는 감정의 밀도를 경험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불편을 느낄 때도 있었다.

접근하기 어려운 구조, 눈높이에 맞지 않는 설명,
몸이 불편한 누군가에겐 이 공간이 결코 쉬운 곳이 아니라는 걸 작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비교적 여유로운 감상이 가능했지만,
그 경험이 모든 사람에게 보장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자주 생각했다.


사람들은 가끔 우리에게 부럽다고 말한다.
아이와 함께 미술관을 다닌 시간이나, 감상을 일상의 일부처럼 나눈 경험 때문이라고 한다.
처음엔 그 말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감각은 꼭 미술관이 아니어도 자랄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길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상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 말이 가리키는 의미를 점점 이해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을 알고, 오래 바라보며, 그 감정을 나누는 사람은 어떤 순간에도 스스로를 지탱할 힘을 갖게 된다.

우리에게 예술은 그런 힘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예술은 때때로 선택 가능한 여가로 여겨지지만, 누군가에겐 감정을 표현하고, 세상과 연결되는 가장 근본적인 언어일 수 있다.

우리에게도 그랬다.
감상은 아이의 표현이 되었고, 내 말이 되었다.
누군가의 그림을 보며 시작된 시간은 결국 우리 각자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이 여정을 통해 우리는 함께 감각하고, 나누고,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무엇을 배웠느냐고 묻는다면 언제나 정확하게 대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에 가지 않았던 그 시간들이 비어 있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우리는 나름의 방식으로 충분히 살았고, 그 안에 미술관이 있었다.
삶의 일부로 감상을 받아들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여정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예술을 즐기며 살아간다는 것은,

삶에 조용히 덧붙여지는 어떤 힘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일이라는 걸

우리는 이 시간을 통해 서서히 체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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