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10화까지 연재하기로 한 이 기록의 아홉 번째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의 감상이 아이의 일상 속에 어떤 방식으로 남아 있는지를 생각해보려 합니다.
훈련이나 의식이 아닌, 삶의 감각으로 자리 잡은 감상.
다음 마지막 회차에서는 우리가 이 시간을 통해 얻은 것들을 차분히 정리해보려 합니다.
요즘은 혼자 미술관에 가는 날도 많다.
아이가 자라서, 예전처럼 하루를 함께 보내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일하는 중간에, 혼자 외출한 길에 후루룩 전시를 보고 돌아오면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고 편하다.
그래도 좋은 전시를 보면 ‘아이와 함께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반응이 궁금하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진다.
혼자가 편하긴 하지만, 아이와 감상을 나누는 시간은 분명히 다르게 즐겁다.
이제는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스스로 전시를 보러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언젠가는 내가 아이에게 좋은 전시를 추천해 달라고 물어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이까지 챙겨서 미술관에 가는 일은 번거롭기도 하다.
그래도 함께 갈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을 때, 더 많이 다니고 더 많이 누려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요즘 아이는 산책 중에 달을 보면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보여주며 "이거 작품 같지 않아?"라고 말한다.
길가의 꽃을 보면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굽힌다.
꼭 멈추지 않아도 되는 순간에 멈추고, 꼭 바라보지 않아도 되는 사물 앞에서 오래 머문다.
감상이란 결국 장소가 아니라 태도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미술관에서 나누었던 대화들이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작품을 보고 했던 말들은 다른 어떤 대화보다 더 오래 남는다.
그 순간의 빛, 공간의 온도, 작품 앞에서의 감정까지 함께 떠오른다.
아이와 함께 나눈 감상의 경험은 단지 기억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장면처럼 마음속에 남아 있다.
요즘 아이의 일상 속에는 감상을 통해 길러진 감각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좋아하는 것을 알아보고, 오래 바라보고, 그 감각을 언어로 옮기는 태도는
단지 취향의 표현이라기보다 삶을 감각하는 하나의 방식에 가깝다.
예술은 아이에게 감정을 조율할 수 있는 틀이 되어주기도 하고, 혼자 있는 시간에 조용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기도 한다.
기쁨은 더 길게 이어지고, 슬픔은 덜 숨기게 된다.
감상은 그런 방식으로 일상을 지탱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예술을 곁에 두고 살아간다는 건, 전시장을 자주 찾는다는 뜻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감각을 꺼내 쓸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뜻에 가깝다.
눈에 보이는 것을 잠시 멈춰 바라보는 힘, 말이 되지 않는 마음을 조용히 담아두는 힘, 그런 힘이 자라는 삶.
미술관에 가지 않는 날에도, 감각은 이어진다.
작품을 보지 않는 하루에도, 감상자의 태도로 하루를 살아가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꽃 앞에 멈추는 일, 노을을 바라보며 나누는 짧은 말.
그렇게 이어지는 시간들이 우리 안에 감상이 남아 있다는 증거라는 생각이 든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남긴 가장 큰 흔적은 작품을 보는 눈보다, 삶을 예술처럼 바라보는 마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