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6년 여름, 그들의 여행

<1816년 여름, 우리는 스위스로 여행을 갔고>

by 김리온

이 책을 고를 때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1816년 여름, 우리는 스위스로 여행을 갔고’라는 담백하면서도 낭만적인 문장에 끌렸다. 여행기라는 장르에 대한 기대도, 메리 셸리에 대한 각별한 관심도 없었지만, 무심히 집어 든 책은 예상과 달리 오래도록 생각할 거리를 남겼다.

여행 기록을 따라가며 마주한 아름다운 풍경에 시대의 공기, 젊은 여성 작가의 시선, 그리고 윤리적인 질문들이 뒤섞여 남았다.


그해 여름, 그리고 그 전의 여름

책은 두 개의 여름을 다룬다. 하나는 1814년, 또 하나는 1816년. 메리와 퍼시는 각각의 여름에 유럽 대륙을 여행하며 스위스를 거친다. 이 두 번의 여행이 모두 낭만적이지만, 들여다보면 그 안엔 복잡한 사연이 있다.

1814년의 여행은 도망치듯 떠난 여정이었다. 퍼시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고, 메리는 10대 소녀였다. 그들은 둘만의 사랑을 선택했고, 사회적 비난과 가족의 단절을 감수하면서 함께 길을 떠난다. Cpbc 가톨릭 평화 방송의 라디오 <이리온 서재> 코너에서 이 책을 소개하려고 보니, 이 지점이 걸렸다.

이들의 관계는 말 그대로 ‘불륜’이었다. 종교적인 잣대가 아니래도, 유부남과 미혼 여성의 조합은 윤리적, 도덕적으로 불편한 이야기였다. 괜찮을까, 이 책을 소개해도. 작가님과 피디님께 조심스레 말씀드렸더니 “옛날 사람들이니 괜찮지 않을까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방송에 소개할 수 있게 되었지만, 마음속 질문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퍼시의 문장, 메리의 시선

그럼에도 이 책은 훌륭한 문학이었다. 퍼시 비시 셸리가 묘사하는 스위스의 풍경은 글로만 읽어도 압도적이었다. 젊은 시인이 감각적으로 받아들인 눈 덮인 산과 호수, 숲과 별빛, 길 위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메리 셸리의 문장은 조금 더 조심스럽고 섬세했다. 그녀는 그 풍경을 바라보며 마음의 풍경까지 함께 적어내려 갔다. 당시 유럽을 뒤덮은 정치적 불안, 전쟁의 기억, 계급과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까지. 단순한 여행 기록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를 조용히 묻는 사색의 일기 같았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건 이 여행이 프랑켄슈타인의 씨앗이 된 여정이라는 점이었다. 1816년, ‘여름이 사라진 해’라 불렸던 그 기후 재난의 시기. 전 세계적으로 추위와 기근이 닥친 바로 그 여름, 메리 셸리는 스위스에서 바이런, 셸리, 폴리도리와 함께 한밤중에 공포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자리에서 프랑켄슈타인의 영감이 탄생했다.


예술가의 삶과 작품 사이

“예술가의 사생활과 그들의 작품은 어떤 관계에 놓여야 할까.

메리 셸리와 퍼시의 관계는 물론이고, 얼마 전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한 카라바조도 생각났다. 그는 훌륭한 종교화를 많이 남겼지만, 동시에 폭력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이기도 했다. 살인 전과가 있었고, 당대 사회에서도 문제적 인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그의 작품을 미술관에서 감상하고, 교육 콘텐츠로 활용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한다.

만약 이 예술가들이 지금 살아있는 인물이라면 그들의 작품은 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방송에서 소개를 하고, 전시장에 찾아가고, 우리는 그들의 작업을 계속해서 소비하고 공유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명확하게 정리되기 어렵고, 누구에게나 동일한 답이 적용되기도 힘들다. 그럼에도 나는 예술가의 사생활이 작품과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작품은 결국 삶의 반영이고, 작가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묻어 있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인물을 지금의 기준으로만 판단하고, 그들의 모든 예술적 성취를 지워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스스로 균형을 고민해야 한다.


아름다움과 불편함 사이에서

문학적으로 이 책은 섬세하고 밀도 있는 기록이었다. 여행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인물의 내면과 시대의 흔적은 단순한 감상을 넘어선다. 메리 셸리의 언어는 당시 여성 작가로서의 위치와 고뇌를 분명히 담고 있었고, 퍼시 비시 셸리의 묘사는 한 젊은 시인이 세계를 어떻게 감각했는지를 보여주었다. 두 사람 모두,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문학 안에서 성찰한 인물들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야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작품이 탄생한 맥락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기괴한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사회와 자연, 인간과 창조물에 대한 고민이 하나의 서사로 엮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출발점이 된 여행기의 의미는 더욱 크게 다가왔다.

여러 생각이 남았다. 그들이 살아낸 방식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는지를 되짚어보게 되었다. 예술은 감상하는 이의 태도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으며, 삶과 예술을 분리하지 않겠다는 태도 역시 하나의 해석일 수 있다.

<1816년 여름, 우리는 스위스로 여행을 갔고>는 여성 작가가 바라본 유럽의 풍경과 사회, 전쟁 직후의 시대 분위기를 드러내는 섬세한 기록들, 그리고 『프랑켄슈타인』 서문에서 이어지는 문학적 맥락까지 하나하나 의미 있게 다가왔다. 그때 남겨진 기록을 지금 읽는 일은, 한 세기의 간격을 두고도 이어지는 감정과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했다. 문장 너머로 시간과 사람이 이어지는 감각이 남고, 예술과 윤리, 삶과 문학을 함께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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