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부터 SBS 방송국에서 <이럴 거면 서점을 살 걸>이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라디오 피디 세 명과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하고, 때론 각자의 사적인 독서 취향까지 나누는 자리다.
그중 한 피디와는 유독 좋아하는 작가가 많이 겹친다. 우리 둘 다, 폴 오스터를 좋아한다.
폴 오스터의 『바움가트너』를 소개한 날, 얼마나 그를 좋아해 왔는지 경쟁하듯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책 이야기를 하고 돌아오는 데, 마음 한켠이 조용히 흔들렸다.
그의 문장 하나하나를 다시 더듬으며, 나는 한 작가를 오래 좋아해 왔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렸다.
그리고 어쩌면, 이제야 그가 정말 떠났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폴 오스터를 처음 읽은 건 『달의 궁전』이었다.
삶이라는 이름의 우연과 필연이 겹쳐지며 펼쳐지는 이야기.
세상에 질문을 던지듯 쓴 문장들이 젊은 시절의 나를 단번에 붙잡았다.
그 세계관은 『4 3 2 1』에 이르러 더욱 강렬해졌다.
‘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펼쳐 보이는 대서사.
그 책을 읽으며 나는 오스터가 단순한 이야기꾼이 아니라 ‘존재의 궤적’을 끝까지 탐색한 철학자였음을 느꼈다.
그의 작품은 하나하나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내게는 모두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그 모든 선택은 결국 어디로 흐르게 될까.
가족이라는 주제를 떠올릴 때면, 나는 늘 『겨울 일기』와 『내면 보고서』를 생각하게 된다.
아내 시리 허스트베트와 딸 소피 오스터와 함께한 일상, 그들과 나눈 감정과 예술적 교감이 담긴 이 책들은
한 작가의 내면과 외부 세계가 얼마나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예술가 가족’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서로 다른 장르에 있으면서도 언어와 예술로 이어진 사람들이다.
우연히 패션 매거진에서 딸 소피 오스터를 알게 되고 그녀의 노래를 듣게 된 후에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지적인 외모, 지적인 목소리, 그리고 노래를 부를 때의 몰입까지.
무대 위의 그녀는 자신만의 감각으로 빛나면서도, 어딘가 아버지의 세계를 품고 있는 듯 보였다.
폴 오스터는 “나는 소피의 가장 큰 팬”이라고 했다.
그 한마디가 그의 아버지로서의 면모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들을 보면, 예술이란 서로 다른 길을 걷더라도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작고 사적인 이야기로 가장 큰 여운을 남긴 작품은 『바움가트너』였다.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노교수 바움가트너가 상실과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이야기.
눈물보다는 관찰에 가깝고, 회한보다는 유머가 깃든 서사.
거기에는 폴 오스터의 마지막 얼굴이 고요하게 겹쳐져 있었다.
작품의 노인은 허구지만, 그 뒤에 선 작가는 분명 살아 있었고, 삶의 끝자락에서도 여전히 ‘언어로 세계를 붙잡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최근 다시 펼쳐본 책이 있다.
<디어 존, 디어 폴>
J.M. 쿳시와 폴 오스터가 오랜 시간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서간집이다.
문학과 삶, 정치와 일상에 대해 오가는 담백하면서도 단단한 문장들 안에서 나는 다시 한번 폴 오스터가 어떤 작가였는지를 되새겼다.
무엇을 말하든, 그는 늘 언어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나는 여전히 그가 남긴 문장 안에 머물러 있다.
이제 더는 폴 오스터의 새로운 책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쉽지만, 그의 문장은 질문처럼 남아 오래도록 다시 읽히리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나는 오늘, 다시 폴 오스터를 읽는다.
감사에 가까운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