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어 보여도, 매일 한다는 것
이노우에 신파치의『꾸준함의 기술』이라는 책을 읽었다.
방송에서 소개하기엔 다소 일방적인 자기 계발서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혼자 조용히 읽기에는 제법 괜찮은 책이었다.
특히 저자의 루틴 목록을 읽다 보면 피식 웃음이 나는 대목들이 있다.
“오늘부터 현관 대신 창문으로 드나든다든지,
매일 같은 편의점에서 같은 비스킷을 산다든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스키야에서 밥을 먹는다든지.”
책은 하고 싶은 일을 루틴으로 삼으면 꾸준히 하기가 훨씬 쉬워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를 때는 억지로 찾아내려 하기보다, 그냥 마음이 끌리는 사소한 일 하나를 시작해 보라고 권한다.
겉으로 보기엔 쓸모없고 별 의미 없어 보일지라도 괜찮다는 것이다.
처음엔 그저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이더라도, 매일 하다 보면 어느새 그것이 그 사람의 개성이자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다고 말한다.
책 속 저자는 지금도 26가지의 루틴을 실천하고 있다.
조깅 25년, 일기 쓰기 22년, 낫토 먹기 13년, 게임 <드래곤 퀘스트> 11년, 춤 연습 2년 10개월, 하루 한 권 책 읽기 2년 8개월 등, 루틴이라는 단어의 끝판왕처럼 보이는 목록이다.
그 리스트를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도 내 일상 속 루틴들을 하나씩 떠올리게 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루틴이 있었고, 또 생각보다 오랫동안 나를 지켜준 것들이었다.
내가 가장 오래 해온 루틴은 아침마다 쓰는 모닝페이지다.
줄리아 캐머런의 『아티스트 웨이』를 읽고 시작한 이 습관은 어느덧 14년을 넘겼다.
매일 아침, 정신이 맑아지기 전에 노트를 펴고 세 쪽을 채워 쓴다.
내용은 상관없다. 정말 쓸 말이 없다면 “쓸 말이 없다”라고 반복해서 적기도 하고, 감사 노트처럼 그날 고마웠던 일을 나열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이게 과연 무슨 효과가 있을까 싶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침이 조금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밤에 일기를 쓰면 종종 그날을 복기하면서 후회하거나 아쉬움이 남았는데,
아침에 글을 쓰는 이 루틴은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을 조금 더 가볍게 만들어준다.
내면의 두려움이 사라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음이 덜 복잡해진 건 분명하다.
스트레칭은 6개월 전부터 시작했다.
목디스크에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도했는데, 하루에 5분씩만 했을 뿐인데도 통증이 확연히 줄었다.
이 루틴 하나 덕분에 “운동을 전혀 안 하진 않아”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게 된 것도 작지만 유쾌한 소득이다.
드립 커피를 내려 마시는 일은 코로나 시기에 시작했다.
처음에는 직접 원두를 갈고 내리는 일이 번거로울 줄 알았지만, 막상 해보니 그 시간이 생각보다 즐거웠다.
새벽에 은은하게 퍼지는 커피 향과, 내가 마실 한 잔을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그 고요한 시간은 하루를 여는 작고 단단한 의식이 되었다.
어느새 이 루틴도 5년째 이어지고 있다.
가장 설레는 루틴은 온라인 서점 출석체크다.
아침이면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 24를 차례로 둘러보고 출석 도장을 찍는다.
그날그날 신간과 추천 도서를 살피고, 마음에 드는 책을 한두 권을 결제한다.
언제든 책을 살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는 그 시간이 내게는 꽤 큰 활력이다.
게임 앱 ‘제페토’에 접속해 젬(보석)을 하나 받는 것도 중요한 루틴 중 하나다.
하루 미션을 수행하면 보석 하나를 받게 되는데, 이걸 2년째 빼먹지 않고 하고 있다.
모은 보석은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게임 속 아이템을 사는 데 쓰이는데,
“엄마, 오늘도 열심히 보석 벌어!”라는 아이의 말이 왠지 귀엽고 좋아서, 하루도 빠짐없이 접속한다.
걷기 앱에도 매일 들어간다.
출석체크를 하고, 저녁마다 만 보 가까이 걷는다.
어떤 날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걷고, 어떤 날은 아무 소리 없이 몸의 움직임에만 집중한다.
머릿속이 복잡하거나 풀리지 않는 일이 있을 때, 걷는다고 해서 바로 해결되지는 않지만,
걷고 나면 기분이 훨씬 나아져 있는 건 분명하다.
이렇게 하나씩 떠올려 보니, 내 일상도 생각보다 많은 루틴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 어떤 것도 특별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쓸모없지도 않았다.
책에서 말하듯, 처음엔 그저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매일을 통과하다 보면 어느새 나를 설명해 주는 문장이 되기도 한다.
매일 한다는 건, 어쩌면 무언가 잘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나로 남아 있기 위해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꾸준함은 취미가 될 수 있다.
쓸모없어 보여도, 오늘도 한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방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