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잊고 있던 날들>
명화가 실린 화집을 라디오에서 소개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림은 시각적인 매체이고, 방송은 오직 소리로만 전달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잊고 있던 날들>
이 책에는 프랑스 지베르니 인상파 미술관이 직접 엄선한 150점의 명화가 실려 있다.
르누아르, 모네, 피사로, 커샛 같은 인상파 화가들이 그린 ‘어린 시절’이 한 권의 책 안에 담겨 있다.
그림뿐 아니라 작품에 얽힌 해설과 이야기가 함께 실려 있고, ‘어린이’라는 공통된 주제가 책 전체를 하나의 감정으로 엮어준다.
그림을 중심으로 각자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볼 수 있을 것 같았고, 우리가 잊고 있었던 시간들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을 방송에서 소개하기로 했다.
책 속 앙드레 브루예의 <빨간 옷을 입은 소녀>를 보는 순간,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어릴 적, 엄마는 우리 세 자매에게 똑같은 원피스를 입혀 정원에 세워두고 사진을 찍곤 하셨다.
빨간 원피스를 입은 세 아이와 정원, 그리고 웃고 있던 엄마의 모습이 그림을 통해 불쑥 떠올랐다.
그 장면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사진 찍었던 추억’으로만 남아 있었는데, 그림을 보고 나니 그때의 기억이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엄마는 우리를 정말 예쁘게 바라보셨을 것이다.
세 아이가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게 느끼셨을 것이다.
당시의 나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아직은 알 수 없는 어린 딸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림 속 아이를 보면서, 그때 엄마가 우리를 얼마나 다정하게 바라보았을지 짐작하게 되었다.
그때의 엄마 눈빛은 더 이상 기억나지 않지만, 그 눈빛이 사랑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마음을 울렸다.
이제는 기억보다 짐작으로 느끼게 되는 감정이 더 많아진다.
카미유 피사로의 <빨래 너는 여인>을 보는 순간에도 또 다른 장면이 떠올랐다.
어릴 적, 엄마가 동생의 천 기저귀를 손으로 빨아 널던 모습을 나는 어느 순간부터 잊고 있었다.
당연하게 여겨왔던 일상이었기에, 그렇게 우리를 하루하루 키워낸 엄마의 모습은 마음속에서 멀어져 있었다.
하얗고 얇은 천들이 줄지어 나부끼던 그 풍경이 그림과 겹쳐졌다.
나는 책을 읽고 있었지만, 어느새 기억 속으로 들어가 그 장면을 다시 보고 있었다.
방송 중에 그림을 매개로 어린 시절의 기억을 풀어냈는데, 나도 모르게 사적인 이야기를 많이 꺼내게 되었다.
방송이 끝나고 나서는 책 이야기보다 내 얘기를 더 한 것 같아 조금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마도 이 책이 본래 그런 책이었던 것 같다.
그림이 사람의 기억을 건드리고, 감정을 불러내고, 자기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책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런 기획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가 버렸고, 내 이야기를 꺼내게 된 것이기도 하다.
방송에서는 이야기하지 못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림 속 복식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나는 디자인을 전공해서 복식사도 공부했는데, 그래서 19세기 그림 속 의복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이 입은 복장, 여인들의 스커트, 바닷가에서도 드레스처럼 입는 스윔웨어까지 세심하게 살펴보게 되었다.
그 시절의 옷을 통해 짐작해 보는 삶의 방식과 태도가 흥미로웠다.
<우리가 잊고 있던 날들>은 명화 해설집이라기보다는, 나를 내 삶의 이면으로 이끌어주는 작은 시간 여행서처럼 느껴졌다.
그림 한 장이 나의 기억을 불러냈고, 그 기억 속에서 오래 묻어 두었던 감정들이 떠올랐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잊고 지냈던 마음들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적당한 순간이 되면, 생각보다 조용하게 그리고 또렷하게 우리를 찾아온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일은 단순히 지나간 시간을 회상하는 게 아니다.
그 시절의 나를 다시 바라보는 일은, 지금의 나를 조용히 다독이는 일이기도 하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충분히 사랑받던 날들이 있었다는 기억만으로,
지금의 마음은 한결 부드러워지고, 설명하기 어려운 위안이 찾아온다.
<우리가 잊고 있던 날들>은 그런 기억의 문을 조용히 열어주는 책이었다.
그림 속 아이들이 말을 걸어왔고, 나는 그 조용한 목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