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방송 때문에 책을 읽게 된다.
내가 먼저 손이 간 책이라기보다는, 화제가 되고 있으니 한 번쯤 소개해볼까 하는 마음에서.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도 그랬다.
요즘 출판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독자라면 단연 배우 박정민일 것이다.
그가 추천한 책은 늘 화제를 몰고 온다. <혼모노> 역시 그가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라는 추천사를 남기며 출간 직후부터 주목받았고,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나는 왠지 그 책을 계속 미뤘다.
요즘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읽을 때면, 머리로는 ‘좋다’고 느끼지만 마음까지 파고드는 감정은 생각보다 드물었다.
그들만의 문장 리듬, 감정의 결,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분명 기존 세대와는 다른데, 그 다름이 흥미롭지만 동시에 낯설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의무감으로 읽는 책들이 늘었고, <혼모노>도 그런 책 중 하나였다.
그러다 이번 방송에서 다루게 되면서 마침내 펼쳐보게 되었다.
‘무당’ 이 주인공이다 보니 가톨릭 평화방송에서는 소개하기에 조심스러웠고, 이 책은 팟캐스트에서 다뤄보기로 했다.
<혼모노>를 읽으며 “이 작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확실하게 들었다.
놀랍도록 재미있었다.
책을 덮자마자, 2년 가까이 책장에 꽂혀만 있던 작가의 전작 <두고 온 여름>이 떠올랐고, 주저 없이 바로 펼쳤다.
이 작가를 이제야 만났다는 게 아쉬울 만큼, <혼모노>는 단단하고도 생생했다.
무당 문수와 신내림을 받은 어린 무당 신애기 사이의 팽팽한 감정선.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헌신, 질투와 연민은 단순한 ‘소재의 힘’이 아니라, 작가의 깊은 관찰력과 이해, 취재력이 만들어낸 결실이었다.
서사를 밀도 있게 끝까지 끌고 가는 힘도 대단했다.
무엇보다 감탄스러웠던 건 단편들의 연결이었다.
<혼모노>에 실린 총 7편의 단편은 각각 독립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전편을 관통하는 건 ‘진짜’와 ‘가짜’, 즉 ‘혼모노’라는 질문이다.
요즘은 ‘재미있다’는 말조차 조심스러울 때가 있지만, <혼모노>는 정말 재미있었다.
서사의 긴장감도, 문장의 밀도도, 그리고 이야기 뒤에 깃든 윤리의식도 모두 인상 깊었다.
명확한 답이나 해석 없이 여백을 두고, 독자가 자신의 감정과 판단을 채워 넣게 만든 것도 오래 기억에 남는 글이 되게 한 것 같다.
다른 결이지만, 『두고 온 여름』도 꼭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은 사적이고 조용한 감정들이 차가운 물결처럼 가슴 안에 길게 남는다.
읽는 내내 서늘하고 시린 감정이 따라붙는데, 오히려 그 여운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지금까지 읽은 젊은 작가들의 소설 중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이었고, 성해나라는 이름을 앞으로도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내 기준대로, 내 구미에 맞춰 책을 고르다 보면 때때로 시야가 좁아지기도 하는데, 방송 덕분에 이런 좋은 책을 만나게 되어 선물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