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내 기분에게 낯가리기

바장 말고 아장

by 안나짱임

밤에 잠들기 전 이불에 엎드려 내일부터는 뭘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적어보려 볼펜을 들었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 그러고 보니 나 뭐 해야 되지?’


크게 해야 할 것 하나는 확실히 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그 외에는 뭐가 없어졌다.


항상 외국어 공부, 일 관련 공부, 자기 계발 등 이거 저거 해야 할 게 많았다.

계획은 무성했고, 제대로 이루는 것 하나 없이 늘 마음만 요란스럽고, 분주했다.


안 그러면 늘 불안했으니깐..

이렇게라도 안 하면 내 스스로 눈치가 보였으니깐..


문제는 계획을 지키지 못할 거 뻔히 알았으면서도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

어김없이 자책감과 무능력함에 늘 조였다. (어쩌라는 건지..)


근데 모르겠다.


갑자기 내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게 아니라서 위에 말한 것들이

여전히 내가 해야 할 일인 건 맞는데도, 그 초조함, 불안함, 쫓기던 마음이 없다.


바장거리던 마음이 없어지고, 그 빈자리만 휑하게 남아있다.


그냥 단순하고, 명쾌하게 내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게 된 걸까?

깔끔하게 딱 ‘하면 해’, ‘가면 가’ 이런 상태가 되었다.


나에겐 상당히 새로운 기분이다.


‘이렇게 갑자기 쿨해도 되나?’ 싶을 정도라 굉장히 낯설다.

분명 내 마음, 내 기분, 내 감정임에도 낯가리는 중이다.


너무 순식간에 바뀐 상태라 정신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 싶다 가도,

이런 문제라면 오히려 대환영이다.


차라리 다행이지.


어쩌겠어. 계속 바장거리기만 한다고 달라질 게 없잖아.

그래, 이제 그만하자.


되려 더 어둡고, 복잡해지잖아. 안 보이잖아.


그냥 새롭게 첫걸음마 떼는 병아리처럼 아장거리자.

산뜻하면 오히려 더 잘 보이겠지.



한 걸음 한 걸음. 아장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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