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피해서 종로로
회사 후배님이 며칠 뒤면 퇴사를 한다.
본사에서 근무하는 후배는 아니지만 5년 전 워크샵 때 노래방 문 밖에서 만났다는 특이한 인연 하나로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낸다.
5년 전 지방의 어느 워터파크로 워크샵을 갔다. 그때 공장에 근무하는 직원들 몇 명도 함께 본사 워크샵에 참석을 했었다. 값비싼 고기 회식을 마치고 항상 그랬듯이 노래방으로 다들 향했다. 30분만 그 노래방에 있어도 청력 역치가 높아져서 노인성 난청이 생겨 산재 처리를 할 정도의 소음이 가득한 곳에서 나 혼자 노래방을 빠져나왔다. 한여름에 비까지 내려서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서성거리는데 나처럼 적응 못하고 떠돌던 직원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외국에서 자라서 호주에서 대학까지 나온 후배는 우리 부서의 독특한 노래방 회식에 적응을 못하고 밖에서 무료함을 달래고 있었다. 그 후배와 깊이 있는 대화를 몇 마디 나눠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이후로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후배님이 본사로 출장을 오거나 주말에 서울로 놀러 오면 1년에 2~3번이라도 얼굴을 봤다.
지난주에 그 후배로부터 퇴사를 결정했다고 카톡이 왔다.
회사 사람 중에서는 나에게 첫 번째로 얘기를 하는 거라고 한다. 크게 아쉽지는 않다. 왜냐하면 어차피 본사에서 근무하던 직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얼굴을 자주 보거나 일을 같이 하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그 후배가 서울에 온다고 하길래 우리는 시간을 맞춰서 "이태원"에서 얼굴을 보기로 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태원이 쑥대밭이 된 마당에 나는 급히 종로로 장소를 바꿨다. 나는 황금연휴 기간에 이태원에 갈 계획이 있었는데 갔다 왔으면 엄청나게 찝찝할 뻔했다. 한밤중에 이태원 클럽 거리를 몇 번 지나가 보긴 했지만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클럽에 가는지도 몰랐다. 클럽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 대신 부서 회식에 참석해 줬더라면 일하면서 돈도 벌고 새벽까지 유흥을 즐기면서 적성에 맞았을 텐데 말이다.
시끄러운 곳 대신 사람 안 다니는 조용한 곳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후배님이 오랜만에 서울 구경시켜달라기에 팔짱 끼고 6시간을 돌아다녔다.
다소 갑작스럽게 퇴사를 하는 후배님은 모든 게 아쉽다고 한다. 하지만 예전에는 다른 회사에서 이 정도 되는 사람들을 못 만날 것 같았는데 이제는 다른 회사 가서도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고향 근처로 연봉까지 높여서 이직을 하게 된 후배님이 거기서도 잘 적응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언니, 마지막이라고 생각을 하니까 회사 근처에 좋은 카페도 보이고 사람들한테 더 정이 들고 그래요...
그래? 난 이미 몇 년 전부터 여기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회사 근처 좋은 카페랑 공방은 이미 전부 다녀봤는데.... 나한테 마지막이 쉽게 안 오네?
언니, 그게 좋은 거 아니에요?
다들 마지막인 것처럼 살고 싶어 하는데 정작 끝은 안오길 바라잖아요!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