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간방 박씨 May 20. 2020

마스크 쓰고 다니는 게 나쁘지 않다

올해는 감기 걸리지 않을 거야

예전부터 나는 남들보다 마스크를 자주 써왔다.


시골에서 살다가 서울로 오니 거의 매일 목감기를 달고 살았다. 감기에 걸리면 일상 패턴이 전부 흔들려버리니 왠지 나만 시간을 손해 보는 것 같았다. 2주 뒤에 목감기가 나았다 싶으면 며칠 뒤에 나는 또 코감기에 걸렸다. 엄마는 내가 자취하면서 면역력이 떨어져서 그렇다며 반찬과 영양제를 많이 챙겨 주셨다. 하지만 문제는 서울의 공기와 대중교통 안에 순환이 안 되는 공기가 너무 안 좋은 탓이었다.


그때는 미세먼지라는 개념이 없었다. 심지어 엄마랑 오빠랑 나랑 셋이서 베이징에 갔을 때도 아침에 뿌옇게 내려앉은 미세먼지를 안개로 생각하고 다녔었다. 그곳에서도 누구도 마스크를 쓴 사람은 없었다. 몇 년 전에 처음으로 교토에 갔을 때는 맑은 공기 속에서도 마스크를 쓴 일본 사람들을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서울과 비교하면 그 정도 공기는 엄청 깨끗한 것이었는데 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소심한 소대리였던 시절엔 미세먼지 때문에 출퇴근 때 마스크를 쓰면 상무님은 "오늘 미세먼지 안 심한데!"라고 꼭 한마디 씩 하셨다. 그러면 나는 슬며시 마스크를 벗었다가 나가서 다시 끼곤 했다. 단 한 번도 내가 마스크를 쓰는 거에 대해 시비 거는 걸 포기하지 않았던 상무님은 평생 마스크를 안 쓸 것 같았다. 하지만 요즘 상무님은 밥을 숟가락에 떠서 입 안에 넣기 직전까지 혼자 마스크를 안 벗으신다.


다들 마스크를 착용한 채 길거리를 다니니까 좋다. 사람들이 없는 골목에서는 나도 잠깐씩은 마스크를 벗기도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하철에 마스크를 쓰고 타면 몇몇은 나를 쳐다보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서로를 신경 쓰지 않는다. 마스크를 쓰고 얘기를 하자니 잘 안 들리니까 공공장소에서의 불필요한 소음도 사라졌다.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는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각자 알아서 간격을 유지하면서 앉는다. 불필요한 회식이나 술잔 돌리기 그리고 노래방까지 사라지니 내가 굳이 외국 취업이나 외국계 회사를 고려할 필요도 없어졌다. 아마 앞으로의 면접에서도 주량을 묻는 질문은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서로 얼굴을 보던 게 줄어들어서 관계가 소원해졌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좋아하고,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는 어떻게 해서든 연락을 주고받게 되는 것 같다. 최근 들어 조금씩 문을 여는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예약제로 변경이 되면서 정말 그 작품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 입장을 받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매우 조용하게 관람이 가능하다. 다들 마스크를 쓰니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침을 뱉는 빈도도 줄어든 것 같다. 식당에 가도 종업원들이 마스크를 쓰고 서빙을 하니 그들이 "맛있게 드세요"라고 얘기하기 전에 서둘러서 내 음식을 받을 필요도 없어졌다. 그리고 카페에서도 종이컵에 음료를 주니 나같이 느리게 먹는 사람이 컵에다 먹다가 다시 일회용으로 옮겨 담지 않아도 됐다. 카페 공간에 머물러 있는 것도 회사에서 지양하다 보니 일회용 잔에 담아서 사무실 안 내 책상에서 조용히 음료를 마실 수 있게 됐다. 생각해보면 이 사회에는 알게 모르게 쓸데없는 문화들이 너무 많았던 게 아닌가 싶다. 목소리 크고 나서기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조장해 둔 문화가 이제야 조금씩 줄어드는 모습을 보인다.


회식이 아예 없어졌다. 하지만 나는 내일 오랜만에 부사장님과 퇴사하신 이사님과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강제가 아니고 서로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시간을 맞춰서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끝내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특히 내일은 막내인 내가 좋아하는 회를 가락시장에서 사주신다고 하셔서 엄청 기대 중이다. 내 얘기를 듣고 싶어서 모이는 자리라고는 하지만 내일도 부사장님이 말씀은 가장 많이 하실 거다. 면접을 마치고 바로 오시니 면접 후기도 듣고, 퇴사하신 이사님은 세무사 시험이 3개월 미뤄졌다고 하는데 근황도 여쭈어 봐야겠다.


내일 휴가라서 좋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에 편안하게 참석하고 싶어서 휴가를 냈다. 12시에 필라테스 갔다가 1시 10분에 발 관리 예약까지 해놨다. 남아도는 휴가지만 휴가 때도 그냥 집에서 빈둥대서는 안 될 것 같다. 지금까지 살면서 집에서만 빈둥거렸던 적이 있었나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0년 중간 점검을 해야 할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