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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May 23. 2020

가락시장 회센터 처음 가본 날

수족관 회도 맛있네

10년 넘게 가락시장을 지나다니면서 가락시장 회센터를 한 번도 안 가봤다.

이게 다 휴일엔 회사 방향으로는 버스나 지하철도 타지 않은 탓이다. 엊그제 휴가를 내고 가락시장 회센터를 처음 가봤다. 부사장님과 이사님과의 약속 시간은 6시 30분이었지만 두 분 모두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오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나도 30분 일찍 나왔다.


두 분께 작은 선물로 알코올 스왑 100매짜리 2통을 사 갔다. 예전에는 쳐다도 안 보고 독감 주사 맞고 나서야 보던 것이었는데 요즘은 귀하신 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알코올 솜 구하기도 힘들었다. 핸드폰하고 키보드 닦으라고 사드렸는데 두 분 모두 의외의 선물에 좋아하셔서 뿌듯했다.


부사장님과 이사님을 보면 일을 그만두고 싶어 하는 나와 소과장으로서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부사장님 : 올해 3월에 환갑이 되셨다. 앞으로 뭘 하며 살아야 할 것인지 고민이 많으시다. 일거리를 더 찾으시고 본인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곳을 원하신다. 양복 입고 더 오랜 시간 일을 하고 싶어 하신다.


이사님 : 한 회사에 20년 근무하시고 21년을 채우기 전에 사표를 내셨다. 회사에서는 미간을 찌푸리고 다니셨으나 회사를 그만두고 난 후로는 웃음이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이사님은 시험이 3개월 미뤄진 후로 마음의 여유가 더 생겼다고 한다. 공부하다가 1시간만 바람 쐐야지 해서 밖에 나가면 시간은 2시간씩 흘러 있었다고 한다. 이사님 정도라면 시험 날짜에 맞춰서 완벽하게 공부를 끝내 놨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 3개월 더 시험이 미뤄져서 다행이라고 말씀하시는 게 나로서는 의외였다.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 해외사업부에서 외환 관리를 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다들 환율을 보는 것을 두려워했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돈의 환차손익 맞추는 것을 다들 꺼려했다. 회사에서는 1원이라도 오차가 나서는 안되기 때문에 국내에서 원화로 깔끔하게 거래가 되던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또한, 월급은 같은데 업무량만 늘어날 거라고 다들 손사래 쳤다. 아무것도 모르던 소사원이었던 내가 그 일부터 맡게 됐다. 학교에서 회계의 기본 단어는 듣고 와서 차변 대변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회계팀에 자료를 정리해서 제출을 할 때는 오타가 자주 났다. 숫자 맞추기로 집에도 못 가고 회사에 밤 11시까지 머물러 있었지만 결국엔 맞지 않는 숫자를 전부 나는 찾아냈다. 찾아내면 은근히 희열도 있었다. 그 희열감을 나 말고 누구도 느끼고 싶지 않은가 보다. 아직까지 외환 관리 업무는 다들 꺼려해서 내가 맡고 있다. 덕분에 회사에서 세법이나 회계 책을 놓고 많이 배웠다. 그 가르침을 나에게 준 사람이 지금 이사님이었다. 빨리 숙달해서 위에서 원하는 자료를 제출해야 칼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엄청 집중해서 배우고, 업무에 활용했던 것 같다. 처음 회사에 들어와서는 뒤에서부터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일억, 십억까지 하나씩 짚어가며 세던 내가 회사 다니면서 많이 성장한 것 같긴 하다.



가락시장 회센터는 부담스러운 곳이었다.

삐끼라고 해야 하나? 회센터 안에 너무도 많은 삐끼들에 정신이 없었고 좀 더 여유 있게 횟감을 둘러보기에 부담스러운 곳이었다. 다행히 이런 거에 아주 덤덤하신 두 분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이사님 단골집으로 가서 회를 떴다.


답답하게 수족관 안에 갇혀 있는 물고기들이다. 그래도 그 안에서는 코로나는 없겠다
내가 좋아하는 도미다. 언제 마산 어시장 가서 도미 먹어야 하는데...
사진을 찍는 찰나에 한 도미와 눈이 마주쳤다. 밑에 도미는 아주 힘들어 보인다. 우리한테 준 횟감이 아픈 도미가 아니기를...
전복치는 처음 봤다.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하는지 다 같이 모여 있더라
우리 것 회 뜨고 있는 모습이다. 맨손으로 작업하시는 게 요즘 같은 때 심히 찝찝하긴 하네
회는 정말 맛있었다. 기억나는 건 광어랑 도미뿐인데 전부 다 맛있었다. 점심에 라면 먹어서 저녁을 많이 못 먹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매운탕에 수제비 넣어서 끓여주셨는데 목마름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적인 맛이었다


가락시장 회센터 내의 식당에는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채로 많은 회사원들이 다소 지저분한 건배사를 외치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오후 6시에도 텅 빈 회 센터를 보며 하루에 얼마나 벌까 라는 걱정도 들었다. 주변에 70%로 월급이 삭감된 친구들을 보며 나는 지금 회사에서 좀 더 버텨보기로 했다. 퇴사를 하고 이사님처럼 시험공부를 할 자신은 없다. 현직에서 더 일을 하시고 싶어 하시는 부사장님의 말씀을 들어 보면 내 역량이 조금이라도 더 있을 때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게 맞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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