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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May 31. 2020

내가 왜 너를 사랑하는가

Copito를 향한 이유를 알수없는 찐사랑

플라잉 요가 동영상 검색하다가 이문세가 부른 소녀를 오랜만에 들었다
혜리 팬이라서 응답하라 1988은 전부 챙겨봤다. 거기에 나오던 소녀 노래가 참 좋았던 기억이 났다. 다른 가수들이 소녀를 부른 노래도 들어봤는데 들을수록 가사가 참 좋다
가사를 곱씹어서 들으니 마음이 몽글몽글해 지는 기분이다

방금 이문세-소녀를 검색해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노래였다니......
다른 가수들이 앞으로도 이 노래를 많이 불러줘서 더 오랫동안 방송에서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요즘은 이런 감성의 노래를 찾기가 참 힘들다


나는 지금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법을 경험하면서 배워나가고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정의를 찾고자 책을 읽었던 적도 있고, 회사 선배 언니들한테 물어봤던 적도 있다. 내가 애초에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감정을 지키는 것은 어려웠다. 상대방도 그리고 나도 처음 각자에게 느꼈던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들고 서로를 떠나갔다.


어느덧 나는 사랑하는 것보다는 일하면서 돈 버는 게 더 쉽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내 경력과 일은 나를 배신하거나 떠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원하는 게 이것이라고 해서 나도 최선을 다해서 맞춰주려고 노력은 했었다. 하지만 차라리 스페인어 동사변형 6단계를 주구장창 외워서 문장에 대입시키는 것이 훨씬 편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위해 굳이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낮추지 않기로 했다.


이직할 회사든 사람이든 간에 내가 굳이 눈을 낮춰서까지 가야 할 필요를 아직까지도 못 느끼고 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지금 회사 월급이 나쁘지 않고,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 주위에 많지는 않아도 내가 믿고 의지하는 남녀 친구들이 다행이 있다. 10대 때는 내 이상형이었던 첫사랑과 결혼해서 그가 벌어다 주는 걸로 열심히 저축해서 지방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조용히 사는 게 꿈이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점점 더 경제력을 갖추고 코로나 시대에 집에서도 남부럽지 않게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5성급 호텔같은 집에서 살자라는 꿈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에 의해 감정이 휘둘리고 쉽게 상처를 받았다. 심지어 회사에서도 사람들이 퇴사하는 게 싫었다. 하지만 남아야 할 사람의 입장에서 스스로 나는 강해져갔다. 그들이 떠난 빈자리의 공백도 내가 다 메꿨다. 똑같은 월급에 상사라는 인간은 염치도 없이 지금의 내 일에 떠난 사람들의 일까지 나에게 떠넘겼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들의 남긴 일을 처리하는게 서툴렀다. 하지만 하다 보면 그 일도 익숙해졌다. 어떤 날은 이게 **씨 스펙보다 낮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만둔 거구나...라고 일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작 이 일을 하면서 **씨는 이 정도 연봉이나 받고 있었구나


라고 혼자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나와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떠난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연봉 불만족, 회사 생활 부적응, 본사에서 지방에 있는 공장으로의 갑작스러운 전출, 자살 그리고 불륜 스캔들까지 정말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다.


조용할 것 같은 회사 생활이라도 이것저것 보고 듣다 보면 흔들릴 때가 참 많다. 그러다 보니 점점 나는 내 책상에 보이지 않는 유리 방호벽을 친 채로 생활해왔다. 소수의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조직 내에서 내 감정을 지키며 불행하지 않게 사는 법을 터득했다.


그러던 작년의 어느 날, 나는 사무실 근처 작은 공원에서 웅크리고 잠을 자고 있던 한 생명체를 발견했다. 평소에 고양이보다 개를 좋아하고, 고양이의 사나운 눈초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고양이는 첫눈에 반했다.


이유는 그냥 예뻐서...
싫은 이유는 수도 없이 댈 수 있어도 좋아하는 이유는 딱 잘라 얘기하기 어렵다


회사 동료들은 임신한 것 같이 뚱뚱한 고양이라고 하지만 나는 점심 시간이나 틈날 때 꼭 이 고양이를 보러 공원에 들렀다. 이미 길냥이들을 돌봐 주시는 주민분들이 Jack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셨다. 하지만 나는 하얀 눈꽃송이라는 의미의 "copito"라는 스페인어 이름을 붙여줬다. 그리고 브런치에서 내 얼굴 대신 프사를 담당하게 됐다.


오늘 올림픽 공원 장미축제를 보러 가기 위해 회사 방향으로 왔다가 copito를 보러 사무실까지 걸어갔다. 주말에 회사 근처에 온 적이 11년 동안 오늘 포함해서 딱 2번 있었다. 혹시나 누구 마주칠까봐 마스크에 썬글라스를 쓰고 챙이 큰 밀집모자까지 푹 눌러쓰고 갔다.


풀숲에서 잠을 자고 있던 copito다. 앞에 더러운 고양이는 1년 넘게 나를 경계하는 중이다


내가 휴가일 때 M이 copito 사진을 찍어서 보내 준다


항상 어울려 다니는 무리들이다. 얘네들도 짝을 지어서 둘씩 다니는 거 보면 웃기다


날이 엄청 더운 하루였지만 나는 성내천을 따라서 올림픽공원을 지나서 잠실나루역까지 걸어왔다. 한가로운 주말에 성내천은 정말 예뻤다. 콩깍지가 단단히 씌였는지 성내천 주변을 돌아다니던 어떤 길고양이도 Copito만큼 예쁜 고양이는 없었다. 가끔은 Copito를 집에 데리고 오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소유하는 것만이 사랑은 아니니까, 늘 멀리서 지켜보고 간식을 자주 챙겨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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