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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Jun 01. 2020

남들이 일할 때 놀러 다니기

휴가도 많은데 앞으로 주 4일만 일할까?

어제는 너무 힘든 하루였다.


회사였다면 몸이 힘들었어도 어떻게든 참고 퇴근했을 거다. 흔하지 않지만 주말에 이 일을 겪으면서 집에서 골골대고 누워서 쉬어보니 그동안 회사에서는 어떻게 앉아서 버텼나 싶다.


내가 정신력이 강한 것도 아닌데


토요일에는 곧 닥칠 상황도 모르고 18,000보를 걸어 다녔는데 일요일에는 고작 200보가 찍혔다. 일요일에 누워만 있기가 아까워서 평소대로 커피를 내려서 우유를 섞어서 마셨다. 그런데 평소와 똑같은 과테말라 원두인데도 어제는 맛이 입 안에서 끈적끈적하게 맴돌았다.


어제는 그냥 누워있다가 강경화 장관 외신 인터뷰를 찾아서 보다가 다시 누워있고를 반복했다. 하루 종일 집 밖을 나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다음 날이 휴일이었기 때문에 아쉽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컨디션을 회복했다.

평일 오전부터 일이 있어서 강남역에 갔다. 가는 길에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가니 뭘 딱히 하지 않아도 매우 신났다.


집에서 강남역으로 오고 가는 지하철 안은 출퇴근 시간을 피한 시간이라서 한산했다. 소중한 휴일을 낭비할 수 없으니 오늘 내친김에 스케일링도 받으려고 했는데 예약이 다 찼다고 한다. 강남역에서 얼른 일 보고 오래간만에 주변을 둘러보기로 계획했다. 강남역 지하상가는 이미 폐업을 많이 했다. 화장품도 거의 전품목이 1+1이었다. 이제는 굳이 면세품 찬스를 쓰지 않아도 시중에서도 충분히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 경기가 많이 안 좋아서 영양제, 화장품 그리고 옷을 작년보다 세일을 많이 한다. 내 월급이나 소비 행태는 기존과 변함이 없으니 내가 저금하는 액수는 기대하지 않게 올해는 살짝 늘었다. 


강남역 4번 출구에 수많은 음식점들과 대형 빵집을 지나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내가 계획했던 일은 2시간 안에 끝났다. 중간에 회사에서 전화가 한번 오고 동료한테 카톡도 한번 온 게 아쉽긴 하지만, 그것만 빼고는 완벽한 하루였다. 일을 마치니 점심시간이라서 곳곳에 직장인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평소 같으면 나도 그들과 같은 무리 속에 있을 텐데 오늘만큼은 나의 점심시간은 무제한이고 여유로웠다. 게다가 편한 복장에 강남역 골목골목을 지나다니면서 온갖 가게를 기웃거리면서 구경하는 게 좋았다. 식후에 테이크아웃 커피 한잔씩 들고 돌아다니던 직장인들도 전혀 부럽지 않았다. 회사에 있었다면 오후에는 카페인의 힘으로 버텨야 해서 의무적으로 라테를 한잔씩 마신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에 꼬박꼬박 챙겨 먹던 영양제도 안 먹었는데 전혀 피곤하지도 않았다.


매일 먹던 점심을 거르니 배가 무척 고팠다. 하지만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누가 말씀하시니 나는 오늘 점심은 먹지 않았다. 빽빽하게 사람들이 있는 식당 안에 굳이 마스크를 벗고 혼자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좀 더 걸어서 Y가 일하는 구역에 오니까 갑자기 내가 혼자인 게 심심해졌다. Y한테 연락해볼까 했지만 아직도 나는 Y가 언제 일하고 언제 쉬는지 모른다.


작년에 내가 봐 뒀던 영국 브랜드 옷을 사려고 20분을 무더위를 뚫고 걸어왔는데 이 가게도 폐업을 했다. 지하철역에서 너무 멀어진 바람에 나는 반포로 방향을 틀어서 아파트 단지 구경을 했다. 아파트 단지를 따라서 쭉 걸으니 금방 고속버스터미널이 나왔다. 우리 집과 같은 R브랜드 아파트인데도 우리 집보다 훨씬 큰 대단지고 오래된 아파트라 숲처럼 우거진 단지가 좋았다. 비싼 아파트에 사시는 분들은 다들 돈 벌러 갔는지 단지 내에는 외부인 나 혼자만 돌아다니고 있었다.


평일이라 고속버스터미널 안의 백화점에도 사람이 없었다. 평소라면 줄을 서서 사야 하던 빵 코너와 사람에 치이던 공간이 여유 있으니 좋았다. 굳이 뭘 사지 않아도 마음에 여유가 있어서 정말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니 고작 오후 3시였고, 부모님께서 외출을 하셔서 나 혼자 집에서 여유롭게 쉬었다. 오후 3시에 창밖을 보니 울창한 나무 사이로 햇빛을 받아 빛을 나에게 쏘아대던 흔들리던 나뭇잎이 예뻤다. 오래전부터 내 꿈은 마음 편히 눌고 먹는 건데, 이 꿈을 실천하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 막상 매일매일이 평일 같다면 오늘 같은 이 소중함을 절대 느끼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일을 하면서 평일에 여유를 가질 수 있는 Y 같은 교대근무를 해보면 어떨까? 평일에 쉬고 주말에 출근하는 기분이 궁금하다. 주말에 출근하면 지하철도 무지하게 여유로울 텐데 말이다. 그런데 만약 하루가 뒤틀려버리면 무단결근하는 경우도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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