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간방 박씨 Jun 05. 2020

내가 아는 신입 두 명

Y랑 S 이야기

S가 입사한 지 3개월이 넘었다.


나는 5시 30분 땡 하면 칼퇴해서 대중교통에 올라타자마자 눈을 감고 잠깐 자거나 쉬어야 한다. 하지만, 요즘은 퇴근할 때면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내가 사무실을 나서자마자 얼마 후에 뒤따라 나오는 S가 있는 힘껏 뛰어와서 나랑 같이 집에 가기 때문이다. S는 아직까지는 밝고 명랑한 사무실 막내다.


얼마 전 사무실 근처에서 특전사 훈련하는 걸 S와 창밖에서 구경했다.

과장님! 어렸을 때 관사 사셨다면 아버지께서 군인이셨습니까?

아니.. 군인은 아니셨는데 울 아빠도 특전사 나오셨어
 
아 정말입니까? 전 공군 나왔습니다. 공군은 수능 성적 보는 거 아십니까? 그래서 저 군대 있을 때 SKY 출신들 많았습니다.

그래? 전혀 몰랐다야... 그래서 공부 잘한 너도 공군 갔구나ㅋㅋㅋ


퇴근 시간에 눈을 감고 잠깐 쉬는 시간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나의 저녁 시간 컨디션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이런 황금시간대에 갑자기 S가 끼어들어서 이런 쓸데없는 얘기부터 시작해서 업무 할 때 궁금했던 이야기 등을 나에게 물어보기 시작한 거다. 메시를 좋아해서 스페인에 축구 경기를 보러 갔다가 스페인어를 잘 몰라서 일어났던 해프닝 등도 얘기한다. S는 스페인어를 온라인 강의로 조금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퇴근할 때 본인 스페인어 연습 겸 나랑 스페인어로 대화하자고 하거나 점심시간에 멕시코 음식점에 가면 이런저런 단어를 나한테 물어본다. 아직까지는 회사 생활에 호기심이 많고, 뭐든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전화도 잘 당겨 받고 탕비실 정리도 알아서 잘해주니 나한테는 이쁜 막내다. 아직까지는......




2019년이 며칠 남지 않은 어느 12월에 사무실 공사 문제로 나는 근처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백색소음 속에서 불편한 의자 위에 앉아 있으려니 어깨랑 목이 더 결리는 것 같았다. 업무 집중을 못하고 있던  순간 나는 Y에게 카톡을 받았다. Y의 근황이 궁금했었는데 알아서 환하게 웃고 있는 졸업사진을 나에게 카톡으로 보낸 것이다.


나는 딱히 남일에 신경 쓰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데 짧은 기간에 목표를 달성한 기특한 누군가가 졸업을 하고 며칠 뒤 새 출발을 앞두고 있었다. 누군가가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던 건 나로서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Y가 S 하고 비슷한 나이인가? (언제 나한테 본인에 대해서 얘기를 한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 내가 나이와 얼굴 그리고 이름을 잘 기억 못 하니 무슨 연상법이라도 써서 외워나가야 하나 싶기도 하다.)


Y를 보면 S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 S를 보면 Y가 종종 생각난다. 깔끔한 Y도 회사에서 탕비실이나 주변 정리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잘하고 있을 텐데 말이다. 둘이 나이는 비슷한데 S는 나에게 과장이라는 호칭을 부른다. 하지만 Y는 내 이름을 부른다. 언제 호칭의 변화가 있으려나 궁금하기도 한데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도 나쁘진 않다. 요즘은 회사에서도 직급을 안 부르는 추세이고, 대접받고 싶었던 어린 시절도 지났다 보니 밖에서는 내 이름이 불려지는 게 좋다.




내가 신입이었을 땐 딱 봐도 일본 순사 앞잡이같이 생긴 선임으로부터 매일매일 갈굼을 받았다. 사람 때문에 이직을 하면 꼭 그런 사람을 다른 회사에서도 만난다는 속설에 나는 적어도 사람 때문에 이직하지는 않겠다고 매일 다짐했다.


늙는 것은 싫지만 과거로 돌아가는 건 더 싫다. 물론 심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불안정했던 그 시절을 겪었기에 그나마 지금의 내 모습이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현재 내 위치가 나쁘지 않고, 안정적이라고 위안을 삼으며 마음 편히 산다고 생각을 해왔다. 그런데 언젠가 Y는 나와 나란히 걸으며 말했다.


일이 힘들어도 다른 선배들처럼 현실에 안주하지는 않을 거예요


S와 Y 둘 다 그들이 간절히 원했던 직장에 들어와서 각자 색다른 경험을 쌓고 있다. 옆에서 지켜보는 S는 처음 입사 전보다 2kg 정도가 빠진 모습이다. 지난번에 만났던 Y는 다소 여윈 모습이었다.


7성급 호텔 레스토랑에 가도 내 입맛에 다 맞는 반찬이 있을 리가 없다. 나는 두 사람이 앞으로 맛있는 반찬만 먹기를 바란다. 하지만 직장 내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분노, 슬픔 그리고 절망과 같은 맛없는 반찬도 꼭꼭 씹어서 그들의 삶에 영양분이 되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들이 일할 때 놀러 다니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